한동훈의 돌이킬 수 없는 길

안홍욱 논설위원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당권→대선 후보→대권’이란 3단계 대선 프로젝트의 첫 관문을 통과했다. ‘한딸’로 불리는 팬덤도 생겼다. 특히 용산과 친윤의 배신자 프레임 공격을 뚫고 득표율 63%란 압도적 승리를 거둔 의미는 크다. 당원과 보수 지지층에서도 윤석열 대통령과 한 대표는 분리됐다. 하지만 대권가도가 장밋빛 전망은 아니다. 이재명 전 민주당 대표를 상대하러 가기 전에, 그의 앞에 서 있는 윤 대통령을 넘어야 한다.

한 대표의 전당대회 메시지를 압축하면 ‘국민 눈높이’다. “배신하지 않을 대상은 대한민국과 국민”이라는 말도 강렬했다. 윤 대통령으로 향하는 채 상병 특검법 찬성, 수평적 당정관계는 이를 상징하는 약속이었다. 아직 대통령 임기가 반환점을 돌지 않았는데도 정권 말기적 현상을 보이는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는 불가피했을 것이다.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이 충돌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현직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을 만들 순 없어도 대통령이 안 되게 만들 수 있다는 건, 김영삼과 이회창의 사례가 보여줬다. 보수 진영에선 지지율이 바닥을 기는 윤 대통령이 한 대표에게 길을 내줘야 한다고, 먼저 변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나를 밟고 지나가라며 등을 내주진 못할지언정, 발목은 잡지 말라고 한다. 그런다고 국민들이 익히 지켜봐왔던 윤 대통령이 과연 바뀔까.

윤 대통령이 7·23 전당대회 다음날 여당 신임 지도부를 대통령실로 초청해 만찬을 했다. 한 대표와 서로 팔을 휘감고 러브샷도 했지만 분위기가 화기애애한 것 같진 않다. 윤 대통령이 낙선자 3인방(나경원·원희룡·윤상현)까지 부른 걸 보면 한 대표가 불편했던 것 같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남 일처럼 “(한 대표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혼자 놔두지 말고 주위에서 잘 도와주라”고도 했다.

그로부터 엿새 뒤인 지난 30일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회동했다. 정진석 비서실장만 배석한, 사실상 첫 독대였다. 정국 현안·이슈는 테이블에 오르지 않았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당직 개편 얘기가 나오자 “이 사람 저 사람 폭넓게 포용해 한 대표 사람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면서도 “당의 일은 당대표가 책임지고 알아서 하시라”고 했다. 한 대표는 31일 임기 보장을 요구하며 버티는 친윤 정점식 정책위의장을 만나 사퇴를 요구했다. 최고위원회를 친한계 다수로 재편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한 대표가 두 차례 윤 대통령을 만나서 했다고 소개된 발언의 중심에는 윤 대통령이 있다. 지도부 만찬에선 “대통령 중심으로 뭉치자”고 했고, 독대 회동에선 “대통령이 걱정 없게 잘해내겠다”고 했다. 당대표가 되자 두 사람 간에 쌓인 감정을 풀어보려고 한 것 같다. 권력의 속성상 당대표가 힘으로 대통령을 이길 수는 없다. 게다가 여당 다수는 여전히 친윤계다. 초장부터 윤 대통령에 맞섰다 분란만 커지면 득될 게 없다고 봤을 것이다.

갈등을 봉합하고픈 두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갈지 알 수 없다. 민낯을 확인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야당은 채 상병 특검법으로 한 대표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한 대표의 측근인 장동혁 최고위원이 ‘제3자 추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굳이 논의를 이어갈 실익이 없다”고 유보 가능성을 비쳤고, 한 대표도 민주적 토론 과정을 거치겠다고 했다. 당내 특검 반대론을 뚫는 게 쉽진 않겠지만 한 대표는 특검에 반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미 채 상병 특검을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너무도 단호하게 얘기한 터라 퇴로가 없다. 이제 와서 특검을 거부하면 대국민 거짓말쟁이가 되고, 정치적 미래는 사라질 것이다. 그때도 윤 대통령이 ‘당대표가 알아서 하시라’고 잠자코 있을 리 만무하다. 두 사람의 충돌은 필연이 될 것이다. 윤 대통령 국정운영에 국민 눈높이를 갖다 대면 부딪칠 이슈가 한둘이 아니다.

한 대표의 또 다른 숙제는 당 재정비다. 박근혜 탄핵 이후 국민의힘이 다시 정권을 잡았지만, 보수의 정체성은 흐릿하다. 보수 의제로 정책 이슈를 주도하지도 못한다. 이런 식으론 지속 가능한 정당이 될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당 혁신은 그 자체로 난제이지만, 윤 대통령과 관계가 틀어지면 난망한 일이다. 대선에 출마하려면 1년 뒤에는 당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니 시간도 많지 않다.

한 대표는 전대 출마선언문에서 “결심했으니 주저하지 않겠다”고 했다. 권력 의지를 숨기지 않는 그는 어쩔 수 없는 길로 들어선 것 같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말이다.

안홍욱 논설위원

안홍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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