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서 밀려나는 존재를 위한 유머

최민지 기자
[책과 삶] 공간서 밀려나는 존재를 위한 유머

이반지하의 공간 침투
이반지하 지음
창비 | 364쪽 | 1만8000원

아티스트 이반지하는 ‘공간’에 대해 늘 수비태세를 갖추고 살았다. 공간은 늘 그를 안아주기보다 밀어내는 쪽이었다. 지금 있는 곳 역시 언젠가는 나를 밀어낼 것이라고 각오하며 산다.

공간과 불화하는, 또는 밀려나는 존재가 어디 그뿐인가. 지하철에서는 ‘나쁜 장애인’이 쫓겨나고 성소수자 청소년은 학교를 박탈당한다. 어떤 시민들은 공공도서관을 빼앗긴다.

<이반지하의 공간 침투>는 그가 종횡무진했던 ‘공간’, 그리고 그와의 줄다리기를 통해 얻은 탐구가 담긴 에세이다. 가부장제와 퀴어성, 젠더와 매체의 경계를 가지고 노는 다매체 예술가인 그의 세 번째 책이기도 하다.

이반지하가 다루는 공간이란 우리가 사는 세상 전부다. 생계를 위해 일했던 편의점과 호텔 조식 뷔페부터 디스크 수술을 받고 입원한 병원, 모종의 해방감을 느낀 자동차 안, 온·오프라인 세상과 삶까지.

차별과 배제를 뚫고 침투한 경험이 주된 소재지만 즐거움이 더 많은 책이다. 웃기는 재능을 타고난 ‘웃수저’의 책답게 특유의 유머가 곳곳에 침투해 있다. 3부 ‘헛걸음도 걸음이다’의 첫 글 ‘진짜 웨딩홀에서’는 그중에서도 압권이다.

이반지하는 자신의 팬인 이성애자 커플의 결혼식에 사회를 보러 갔다 크게 놀란다.

‘어느 시민단체의 몇 번 회의실이나 홍대·이태원의 어느 바’가 아닌, 진짜 결혼식만을 위해 만들어진 웨딩홀은 그에게 너무나 낯선 공간이었다. ‘적당히 대안적’이지만 정상성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은 이 결혼식에서 이반지하는 어떤 균열도 내지 않기 위해 애쓴다.

무사히 행사를 마친 후 기진맥진한 그는 이세계(異世界)와 접촉의 피로함을 토로했지만, 한편으론 오랜 시간 비웃어왔던 의식을 인간적으로 이해하게 됐다고 고백한다.

“모든 발을 헛디디고 있으면 결국 그것도 걸음걸이가 된다”는 이반지하의 말 그대로다. 그렇기에 혼자 오려내어진 듯 튀는 존재의 고군분투는 씁쓸함보다 위로와 희망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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