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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와 기업 밸류업

7월25일 발표된 ‘2024년 세법개정안’은 윤석열 정부의 세 번째 감세안이다. 윤 정부는 출범 첫해인 2022년 법인세율 인하와 다주택자 중과 완화 등 13조원에 달하는 재벌·부자 감세를 단행했다. 올해 세법개정안의 세수 감소 효과는 약 4조4000억원으로 추정되는데, 상속·증여세 개편이 세수 감소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처럼 대규모 상속세 감면을 추진하는 이유로, 2016년에 자녀공제액을 1인당 3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인상한 것을 제외하고 상속세제가 지난 25년간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든다. 그동안 물가상승이나 경제성장을 고려해 개편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그런데 물가상승이나 경제성장을 고려해야 한다면, 왜 근로소득세율은 조정하지 않는가? 이번 세법개정안에서 10%의 세율이 적용되는 상속세 최저 구간을 1억원 이하에서 2억원 이하로 상향한 것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상속세 최고 구간인 30억원 초과 구간을 없애 이 구간에 적용되는 부자들의 세율 부담을 10%포인트 깎아줬다. 물가상승 등을 고려한다면 상속세율 구간을 조정하면 될 것이지, 최고 세율을 없앨 이유는 없다.

이는 명백한 부자 감세이고, 필시 우리 사회의 계급화를 가속화하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다. 자녀공제를 1인당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대폭 상향한 것과 기초공제 2억원까지 고려하면, 앞으로 부모가 강남에 아파트를 갖고 있지 않으면 강남에 자기 힘으로 아파트를 마련하는 게 불가능한 세대가 올 수 있다. 금수저·흙수저 격차는 더 확고히 벌어질 것이다.

여기에 더해, 최대주주 보유주식 할증평가도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최대주주 보유주식 20% 할증평가는 경영권 프리미엄이라는 무형자산에 대한 과세다. 2018년 한국지배구조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경영권 프리미엄은 평균 50% 내외에서 형성되고 있다. 기존 할증평가 역시 이미 최대주주에게 매우 유리한 것이다.

정부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댔다. 일부 기업인이 최대주주 보유주식 할증평가 때문에 자녀에게 회사 지분을 상속·증여하지 않고, 외국계 사모펀드 등에 매각한 후 현금으로 상속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윤 정부는 이미 2022년과 2023년 세법 개정을 통해 가업상속공제 및 가업승계 증여세 과세특례 등의 적용 대상·공제한도를 대폭 확대했고 사후관리 요건을 완화했다. 따라서 최대주주 보유주식 할증평가 폐지의 혜택을 볼 사람은 재벌 총수일가일 뿐이다. 중소·중견 기업주가 회사를 상속하지 않는 대부분의 이유는 자녀가 기업 경영을 물려받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상속세 부담으로 경영자가 기업 주가를 찍어 누르게 되므로, 상속세 개편은 기업의 주가를 높이는 기업 밸류업 조치의 하나라는 궤변도 있다. 기업 밸류업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는 말이다. 저평가된 기업의 주가를 끌어올리도록 유인하거나 강제하는 정책을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증권거래소나 정부가 주도하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말하자면, 경영자가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충분히 노력하는 대신에 사익을 추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미국식 기업 지배구조가 왜 작동하지 않을까라는 의문이다.

한국 재벌 총수일가는 기업집단 전체 지분의 3% 정도로 계열사 간 출자를 활용해 기업집단 전체를 사실상 지배하고 경영을 좌지우지한다. 이런 기업 소유구조하에서 재벌 총수가 사실상 계열사의 사외이사를 선택하고, 따라서 사외이사 제도라는 기업 지배구조는 작동하지 않게 된다. 재벌 대기업에선 전문경영인의 사익편취가 아니라 지배주주인 총수일가의 사익편취가 문제인 것이다. 주요 계열사에만 높은 지분을 지닌 총수일가는 계열사 간 일감몰아주기나 상표권 거래, 개별 계열사에서 높은 보수와 자사주 활용 등으로 사익을 편취하고 있다. 또 최근 두산로보틱스의 두산밥캣 인수·합병 건처럼 계열사 간 합병을 통한 사익편취 사례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2023년 3월에 도쿄증권거래소가 주당 순자산가치가 1배 미만인 상장기업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성공적이라고 평가받는 이유는 2014년 이후 지속적으로 이뤄진 기업 소유지배구조 개혁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련의 개혁으로 일본 기업들의 상호출자가 상당히 해소되었고, 미국식 기업 지배구조가 작동할 여건이 마련되고 있다.

상속세를 깎아주면 재벌 총수일가의 사익편취가 없어질 것이라고 윤 정부가 믿고 있을까? 소도 웃을 노릇이다. 기업 밸류업의 핵심은 소유지배구조 개혁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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