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기록물에 돌려주라 지시도
비서실장·행정관 말이 서로 달라
일관성 하나 없는 대통령실 해명
더뎠던 김건희 명품백 검찰 수사
이원석 총장 ‘패싱’까지 저질러
변호사가 무죄 판결을 받아내는 방법 중 하나는 피해자의 증언을 공격하여 그가 부분 부분 말을 바꾸게 하는 것이다. 진술의 일관성이 지켜지지 못하면 법원은 증언의 신빙성을 의심하게 되고 나아가 무죄의 심증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피해자의 진술이 바뀐다고 해도 피고인의 진술 자체가 오락가락하면 유죄의 심증이 커진다. 이 경우 변호사는 진술이 달라진 이유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느라 진을 뺀다. 정치 영역에서의 말 바꾸기에도 이런 이치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수수 문제에 대한 최초의 공식 입장은 지난 1월19일 대통령실에서 나왔다. 대통령실은 이를 ‘선물’로 칭하면서 “대통령 부부에게 접수되는 모든 선물은 규정에 따라 관리 보관되는 만큼 문제될 이유도 없고 사과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며칠 후인 1월22일 여권 내의 이른바 ‘친윤’ 핵심인 이철규 의원은 “절차를 거쳐서 국고에 귀속된 물건을 반환하는 것은 국고 횡령이에요. 그 누구도 반환 못합니다. 이것은 대한민국 정부 것이죠”라고 말했다. 사과는 없었지만, 그나마 여기까지는 해명의 논리가 선다 싶었다. 요컨대 디올백은 선물이고 규정대로 국고에 귀속되었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2월7일 연두회견을 대신한 KBS 앵커와의 대담에서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인은 어느 누구에게도 박절하게 대하기가 참 어렵다”며 “(선물을)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이고, 좀 아쉽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왜 대통령 자신이 나서서 “문제라면 문제”라고 한 일을 두고 문제될 이유가 없다고 했을까. 또 윤 대통령은 그냥 사과하면 좋았을 일을 두고 ‘정치공작’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을까.
그러더니 7월1일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은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이렇게 답한다. “대통령 기록물 여부에 대한 판단은 아직 그 시기가 도래하지 않았습니다. 보통 금년 말까지 그 판단을 해야 되는데….” 그는 당시 “물건은 있는 포장 그대로 대통령실 청사 내에 보관 중”이라고 했는데, 이야기가 좀 이상해졌다. 국고에 귀속시키면 그만인 대통령 기록물이라면, 왜 2022년에 받은 것을 보관만 하다가 2024년 말에 가서야 기록물인지 여부를 판단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지 않은가.
말은 또 달라졌다. 대통령실 ‘여사팀’ 소속 유모 행정관이 7월3일 검찰에서 참고인으로 진술하면서 “김 여사가 디올백을 받은 당일 내게 선물을 돌려주라고 지시하였는데 지시대로 이행할 것을 깜빡 잊었다”고 한 것이다. 그 말대로라면 유 행정관은 디올백을 어디엔가 보관하고 있었을 터다. 그런데 왜 그는 이미 2023년 11월경 디올백 문제가 언론 보도로 알려진 후에도 물건을 돌려주지 않다가 검찰에 가서 그렇게 진술한 것일까. 한편으로 디올백으로 소동이 벌어지고 있었으니 김 여사로서는 유 행정관을 불러 선물을 돌려주었는지 물어보고 돌려주지 않았다고 하면 그걸 회수해서 규정대로 처리했어야 하고, 대통령실이 그 사실을 밝혀야 하지 않았을까. 디올백의 행방에 관하여 같은 대통령실에서 나온 두 사람의 말이 다른 점도 이상하다. 게다가 김 여사 측 변호사는 7월16일 “선물의 포장을 풀어보았다가 다시 포장했다”고 했는데, 이는 정 비서실장의 말과 또 다르다.
해명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만큼이나 심각한 문제는 검찰의 김 여사에 대한 수사 진행이 무척이나 더디었던 점이다. 그러더니 이번엔 기껏 김 여사의 출석을 확보하고서도 조사 장소를 검찰청사가 아닌 곳으로 정했다. 더욱이 수사를 맡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이원석 검찰총장에 대한 사전보고도 하지 않은 ‘패싱’까지 저질렀다. 과거 전직 대통령이나 그 배우자에 대한 수사에서 택한 조사방식과 비교하면,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보노라면 지금까지 해명을 주도한 어떤 세력이 검찰총장의 의지마저 꺾으며 사건을 무리하게 처리하려 한다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국민들을 화나게 하는 것 중 하나는 자꾸 말이 달라지며 또 잘못을 사과할 줄 모른다는 점이다. 디올백 문제에 관한 최선의 방책이 있었다면 무엇이었을까.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는 소설 주인공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중학교 영어 교과서에 실린 말이다. “정직은 최선의 정책입니다. 나는 이 원칙을 고수합니다.” 그다음에 이어지는 말은 이렇다. “통치에서 주요 포인트는 시작을 잘하는 데 있습니다.” 그 소설이 나온 게 16세기다. 처음부터 진정성 있고 발빠르게 대응했으면 그나마 최소화할 수 있었을 문제를 이 지경으로 만들다니, 딱하다, 21세기 이 나라 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