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독일 베를린 국방부 청사에서는 2차 세계대전 중 히틀러 총통 암살을 기도했다가 희생된 슈타우펜베르크 대령 등에 대한 독일 정부 추모식이 열렸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 숄츠 총리 등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의인들을 기렸다. 영화 <작전명 발키리>(2008)로도 알려진 사건은 프로이센 귀족 출신 군인들로 구성된 비밀결사 ‘크라이사우 서클’이 주도했다. 슈타우펜베르크는 1944년 7월20일 히틀러가 작전을 주재하던 회의실에 폭탄이 든 가방을 두고 나온다. 폭발을 확인한 뒤 공모자들과 쿠데타 계획(발키리 작전)을 실행했지만, 부상에 그친 히틀러 측 반격으로 그날 밤 붙잡혀 즉결 처형된다.
독일 정부가 ‘발키리’ 작전 80주년을 성대하게 기념한 것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재무장에 나선 독일이 ‘히틀러식 패권주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하려는 의도다. 유럽연합의 중추인 독일이 재무장까지 하는 상황에서 상생과 공영의 유럽을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환기해 주변국을 안심시키려 했던 것이다. 독일 내 ‘친나치 극우’에 대한 경고의 뜻도 물론 담겨 있다. 자국의 아픈 과거사를 날것 그대로 드러내고 성찰함으로써 주변국을 배려하는 독일의 심모원려(深謀遠慮)가 놀랍고도 낯설다.
익히 아는 대로 역사를 대하는 일본의 방식은 독일과 전혀 딴판이다. 같은 달 27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일본 니가타현의 사도광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강제동원된 조선인 1519명이 혹사당한 곳이지만 일본 정부는 조선인 강제동원 사실을 끝내 명시하지 않았다. 노동자 자료 전시시설은 세계유산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인 데다 이곳에도 ‘강제동원’을 명시한 설명은 없다. 그나마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에는 군함도(하시마)를 ‘메이지 산업유산’으로 올릴 당시 조선인들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 끌려가 가혹한 환경에서 노동을 강요”당한 사실을 일본이 인정했으나, 이번엔 그 어떤 ‘강제성’도 인정하지 않았다.
역사학자 김태우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 공중폭격의 실상을 미 공군 최하급단위 임무보고서를 토대로 분석해 “미군의 민간지역 폭격은 결코 없었다”는 미국 주장이 허위임을 입증했다. 당시 미 공군은 문서 작성에서 ‘민간지역’ 공격을 ‘군사목표’ 공격으로 순화하라는 ‘위생처리(sanitizing)’ 지시를 내렸지만, 김태우는 가공 전 단계의 기록을 뒤져 진실을 밝혀낸 것이다. 한국전쟁의 미군처럼 일본도 사도광산의 그들에게 불편한 생채기를 말끔히 ‘위생처리’해 세계유산으로 내놓은 것이다. 등재 결정은 한국이 키를 쥐고 있었지만, 윤석열 정부는 위생처리에 협조했다. 기억의 풍화(風化)가 이뤄지면 위생처리 과정을 모르는 후세는 사도광산에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의 고난을 알 수 없게 된다. ‘위생처리’가 반복되다 보면 후세들은 ‘일본의 식민지배가 혹독하지 않았으며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여기게 될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한·일관계는 일본이 뻗대면 한국이 알아서 ‘꼬리를 내리는’ 일이 반복됐다. 독립기념관장 임명에서 보듯 정부의 이념 기반이 뉴라이트이니 이제 놀라울 것도 없지만, 일본의 뻣뻣한 태도에는 다른 사연이 있다. 아베 신조 총리가 2015년 ‘종전 70주년’ 담화에서 한 ‘다시는 사과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후임 정부가 계승해 한·일관계에서 사과와 양보를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베의 유훈’을 한·일 정부가 받들고 있는 모양새다.
이 비정상적 관계가 오래갈 것 같지는 않다. 지난 6월 한국일보·요미우리신문 공동 조사에서 한국인 응답자의 58%가 ‘최근 1년간 한·일관계를 평가하지 않는다’고 했고, 윤 정부의 ‘강제동원 제3자 변제’에 61%가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억눌린 한국인들의 감정이 언제든 용수철처럼 다시 튀어오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일관계는 ‘감정의 이익균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뉴진스의 하니가 도쿄에서 ‘푸른 산호초’를 불러 일본을 열광시키고 한국 TV에서 일본 노래가 흘러나오는 시대가 됐지만, 문화교류와 과거사는 ‘감정의 트랙’이 다르다.
독일은 서부 에센의 졸베라인 탄광지를 2001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면서 강제동원 역사를 적극 공개하고 정부가 추모시설을 건립했다. 독일이 유럽의 중추가 된 반면, 일본이 ‘아시아 회귀’ 대신 미·일 동맹에 매달리는 것은 이런 차이 탓이다. 그런 일본에 경계심 없이 뇌동(雷同)하며 군사동맹까지 추진하는 윤석열 외교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