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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탐구 생활

초등학교 다닐 적에 ‘탐구 생활’이라는 학습 교재가 있었다. 보통 방학하는 날에 받았는데, ‘탐구 생활’의 빈칸을 채우는 일은 일기 쓰기만큼 어려웠다. 커다란 원에 하루치 시간표를 그려 넣는 것부터가 고역이었다. 미루지 않는 습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절히 깨닫기도 했다. 그걸 깨달은 게 개학 전날인 게 문제였다. 당시엔 신문 말고 지난 날씨를 알 길이 없었기에 일기를 몰아 쓸 때면 늘 진땀이 났다.

여름방학 시기라 ‘탐구 생활’이 떠올랐지만, 국어사전을 펼쳐 탐구의 뜻을 찾아보고 나니 생각이 길어졌다. 먼저 첫 번째 탐구. 탐구(探求)는 찾을 탐 자, 구할 구 자가 결합한 데서 유추할 수 있듯, “필요한 것을 조사하여 찾아내거나 얻어냄”이란 뜻이다. 찾기와 얻기가 아닌, 찾아내기와 얻어내기다. ‘내다’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스스로 힘으로 끝내 이루어짐을 의미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탐구에 실패는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두 번째 탐구. 탐구(探究)는 찾을 탐 자, 연구할 구 자를 쓴다. “진리, 학문 따위를 파고들어 깊이 연구함”이란 뜻인데, 여기서 중요한 속성은 바로 ‘파고듦’에 있다. 학문을 탐구하든, 진리를 탐구하든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자연스레 탐구에는 깊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 비집고 들어가 샅샅이 살피는 데 긴 시간이 뒤따를 것임은 자명하다. 탐구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기에 성패를 가늠하기 어렵다. 성패를 따지는 게 불필요하다. 어쩌면 탐구(探究)의 결과로 탐구(探求)가 이루어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세 번째 탐구. 탐구(貪求)는 탐낼 탐 자에 구할 구 자를 쓰고, “욕심을 내어 가지려 함”이란 의미로 사용된다. 탐구(探求)든 탐구(探究)든,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자리에 탐구(貪求)가 있을 것이다. 무언가를 알고 싶다는 마음, 진리를 깨닫고 싶다는 바람 또한 욕심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탐구 과정에서 배우는 것은 어쩌면 욕심을 내어 가지려 할수록 지식이든 진리든 더 멀어진다는 사실이다.

탐구는 앞으로 가는 일이다. 나아가겠다는, 깨달아서 변화하겠다는 의지로부터 앎은 시작된다. 그러나 찾아냄과 파고듦은 어쩔 수 없이 육체적·정신적 피로를 동반한다. 하루아침에 결실이 이루어질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때 필요한 것이 반성이다. 잘못해서가 아니다. 더 잘하기 위해서다. 반성(反省)에는 돌이킬 반 자와 살필 성 자를 쓰는데, 이는 반성이 뒤로 가는 일임을 보여준다. 탐구와 반성을 번갈아 해야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앞만 보며 갈 때면 나의 위치를 파악할 겨를이 없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때때로 새로 난 길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거기서 또 다른 탐구가 시작된다.

길을 걷다가 문득 멈춰 설 때가 있다. 그러곤 뭔가 놓치지는 않았는지 슬며시 뒤돌아본다. 내가 걸어온 자취를 살피는 것이다. 방향은 앞으로만 나 있는 것이 아니다. 걸어온 길이 걸어갈 길을 일러주기도 한다. 탐구하는 일이 ‘아직’에 다가가는 여정이라면, 반성하는 일은 ‘다시’를 소환하는 결단이다. 탐구와 반성을 거듭하며 나는 나에게 가까워진다. 인생에서 탐하고 찾는 대상이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떠나지 않으면 여행이란 낱말도 ‘아직’의 상태다. 딛고 일어서지 않으면 ‘다시’란 낱말은 아직 움츠러든 상태다. 탐구 생활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을 마주하기 위해 다시 길 위에 서는 일이다.

‘탐구 생활’은 개학하는 날 제출해야 했지만, 탐구가 과연 끝날 수 있을까. 언젠가 완성될 수 있을까. 어쩌면 삶은 매일매일의 탐구 생활을 통해 겨우 짐작될 수 있을 뿐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탐구와 반성이 언제든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탐구와 반성에는 ‘늦게’는 없고 ‘제때’만 있을 뿐이다. 마음이 향하는 일에 뒤늦음은 없다.

오은 시인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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