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 집게손’ 재수사 나선 경찰에 시민사회 “피해자에 사과하고 엄정 수사하라”

이예슬 기자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인 ‘페미니즘사상검증공동대응위원회’의 활동가들이 8일 서울 서초경찰서 앞에서 서초경찰서의 성차별적 수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문재원 기자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인 ‘페미니즘사상검증공동대응위원회’의 활동가들이 8일 서울 서초경찰서 앞에서 서초경찰서의 성차별적 수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문재원 기자

넥슨 게임 홍보영상에 ‘집게손가락’을 몰래 그려 넣었다며 엉뚱한 사람을 ‘사이버불링’(온라인 괴롭힘)한 이들에 대해 경찰이 재수사 결정을 내리자 시민사회단체들이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성평등적 관점에서 재수사하라”고 요구했다.

전국여성노동조합 등 6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페미니즘 사상검증 공동대응위원회’는 8일 서울 서초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른바 ‘집게손’ 작가로 허위 지목된 일러스트레이터 A씨를 향한 명예훼손 사건을 엄정히 수사하라고 촉구했다.

위원회는 “어제 서초서는 ‘(A씨의 회사가) 오해를 받게끔 대응해 사람들이 의견을 표명한 것’이고 ‘명예훼손 (무죄) 사건을 보면 (A씨가) 자초한 점이 있다는 판례가 많다’면서 전형적인 피해자 탓하기를 했다”며 “경찰의 미흡한 수사와 2차 가해에 대해 경찰이 피해자에게 직접 사과하고, 성평등 관점에서의 공정한 재수사를 약속하라”고 밝혔다. 이어 “사건 처리 과정에서 성차별이 개입된 경위를 명확히 조사하고, 피해자 권리와 존엄성을 보장할 시스템을 마련하라”고도 했다.

이날 피해자 A씨는 대리인인 범유경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를 통해 전한 입장문에서 “경찰의 불송치 결정 이후 지금까지 암담한 나날을 보냈다”며 “그렇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이 말도 안되는 이유가 받아들여지면 이후 제 뒤에 나올 (다른) 피해자들이 더 힘들 수밖에 없어 슬퍼할 틈이 없었다”고 심경을 밝혔다.

범 변호사는 “경찰은 불송치 이유로 ‘현재 대한민국에서 집게손 동작을 기업 광고에 사용하는 것은 금기시되는 풍토’라고 썼는데 ‘풍토’라고 해서 정당한 것은 아니고 잘못된 금기에 대해 수사기관이 동조해서도 안 된다”며 “설령 정당한 금기라고 해도 명예훼손, 모욕 범죄에 대한 피해가 발생했다면 이를 처벌해야 마땅하다”고 했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2020년 국가인권위원회는 페미니즘 관련 글을 공유하거나 지지를 표했다는 것을 이유로 온라인에서 괴롭힘 및 혐오 대상이 되고 집단 행동에 의해 사실상 직업 수행에 불이익을 받는 것은 부당하므로 법령·제도·관행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경찰이) 인권위 결정문조차 참고하지 않은 건 직무유기”라고 했다.

앞서 서초서는 A씨를 지목해 온라인 괴롭힘을 한 가해자들에 대한 불송치를 결정하면서 게임업계에서 되풀이돼온 페미니즘 혐오 논리를 그대로 실어 2차 가해라는 비판을 받았다. 경찰은 불송치 결정서에서 “대한민국에서 ‘집게손가락 동작’을 기업 광고에 사용하는 것은 금기시되는 것이 현재의 풍토”라며 “피의자들의 글은 극렬한 페미니스트들의 부적절한 행위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표명하는 과정에서 다소 무례하고 조롱 섞인 표현을 사용한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결정서 내용이 알려지며 비판이 쏟아지자 경찰은 “미흡한 결정이었다”고 인정하고 재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A씨는 지난해 11월 넥슨의 게임 홍보영상에서 한 캐릭터가 집게손가락 포즈를 하는 장면을 그린 작가로 지목됐다. 가해자들은 온라인 상에 A씨의 신상을 공개하고 혐오·비난성 글을 올렸다. 그러나 경향신문 취재결과 해당 장면은 A씨가 아닌 40대 남성 애니메이터가 담당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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