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만큼 치열했던 조선의 입시

김한솔 기자
[책과 삶] 수능만큼 치열했던 조선의 입시

조선, 시험지옥에 빠지다
이한 지음
위즈덤하우스 | 328쪽 | 1만8000원

‘내 셋째 아들 징은/ 썩은 나무 같아 새길 수 없네/ 장성한 나이인데 글을 알지 못하니/ 밥통이 되어 곡식만 축내누나/ 자식 바꿔 가르친단 옛말이 있지만/ 초파리 같은 놈 깨우칠 이 없었다오.’

고려의 대표적인 문인 이규보는 자기 셋째 아들 이징을 두고 이런 시를 지었다. 고려 최고의 사학 문헌공도 출신으로 권세를 누렸던 그는 네 아들 중 유일하게 공부를 못했던 이징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렇다고 아들을 ‘썩은 나무’에 비유하다니 너무한 것 아닌가. 하지만 <조선, 시험지옥에 빠지다>에 나오는 공부 안 하는 자식을 마구 두들겨 패서 가출하게 만든 사람, 걷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과거에 꼭 나올 문장을 가르치는 사람 등을 보면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시로 표현한 이규보가 그래도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조선, 시험지옥에 빠지다>는 치열했던 조선의 입시 전쟁을 다룬 책이다. 당시 과거 시험은 출세를 위한 필수 관문이었다. 선비들의 공부 목표는 오로지 과거 급제였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인물들은 대체로 과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이들이다. 다산 정약용은 큰아들이 태어나 백일이 되었을 무렵 ‘때가 오면 출세하여 임금을 보좌하여 지고’라는 글을 썼다. 그 아들이 한글, 한자를 떼자마자 본격적으로 시험 준비를 시켰다. 이름난 가문에서는 모두가 이렇게 했고, 여력이 안 되는 이들은 논밭을 팔고 빚을 내가며 10년, 20년씩 과거를 준비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과거에도 ‘입시 비리’가 횡행했다. 대리 시험은 물론이고 채점자들이 훌륭한 답안지에 작성자 이름을 지워버리고 자기 사람의 이름을 적어넣는 일까지 있었다. 퇴계 이황은 과거 제도를 강하게 비판한 뜻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런 식의 출세가 진정한 ‘선비의 길’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 자기 아들에게는 이런 편지를 썼다. ‘진실로 가망이 없을 것이야 알지만 함께 시험 준비한 친구들과 와서 시험 봐라. (…) 다른 선비들이 용기를 북돋우는 때인데 너는 분발하지 않으니 나는 대단히 실망하고 실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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