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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입력 2024.08.11 21:11

수정 2024.08.11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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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想과 세상]마을
자연은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라는 당신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정적에 묻혀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무거운 게 자연인지 안다.
나일강 반사된 햇빛에 마르면서도
여전히 침묵에 잠겨 있는 스핑크스처럼
누구도 밀쳐낼 수 없는
깊은 우수로 덮쳐온다.
들러붙은 정적에는 자연 또한 포로이다.

자연은 아름답다,라는
지나가는 여행자 감상은 젖혀두어야 한다.
거기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던 사람과
거기 아니면 이어갈 수 없는 목숨 사이에서
자연은 항상 다채롭고 말이 없다.
떠들썩한 날들을 살아본 사람이라면
안다 정적의 끝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왜 도마뱀은 일직선으로 벽을 오르고
왜 매미는 천년의 이명(耳鳴)을 울리는지도,
모두들 떠난 마을
이제 정적이 어둠보다 깊다.

김시종(1929~)


유령처럼 멀고 험한 땅을 배회하는 영혼들이 있다. 디아스포라를 사는 경계에 선 사람들, 조국을 등지고 떠돌 수밖에 없었던 그들은 우리의 오래된 얼굴들이다. 재일 조선인 김시종 시인은 일본어로 시를 쓰는데, 이는 일본어로 일본에 저항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시인은 “자연은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자연은 아름답다”라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라고 쓰고 있다. “거기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던 사람”들과 “거기 아니면 이어갈 수 없는 목숨”들이 떠도는 경계와 경계 사이에서 사과받지 못한 영혼들의 무덤을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이번 광복절은 더 “깊은 우수로 덮쳐”올 것 같은데, 누가 누구의 눈물을 닦아줄 것인가.

시인은 떠나온 제주를 ‘달보다 먼 곳’이라고 고백했는데, 이는 살아남은 자의 수치심 때문일 것이다. 그 수치심과 죄책감으로, 자연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공포에 가까운 정적이었다. 하지만 시인이 그 무거운 정적을 이겨낸 것은 자신을 지키고자 했던 들끓는 힘이자, 간절하고 강력한 시의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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