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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

입력 2024.08.13 20:33

수정 2024.08.13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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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 생활이 오래 지속되면서 유난히 예민해진 감각이 있는데 바로 청각이다. 내가 이곳에서 말 없는 사람이기 때문일까 나처럼 말 없는 존재의 소리가 전보다 크게 들린다. 가만히 듣고보니 세상이 소리로 꽉 차 있었다. 특히 인간이 만들어낸 소음이 줄어드는 곳에서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들의 소리로.

비둘기, 참새, 지빠귀, 까치 등 제각각 노랫소리가 다른 새들은 이른 아침에 가장 크게 합창한다. 집 근처 커다란 단풍버즘나무는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수십미터에 걸쳐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를 다른 높낮이로 들려주는데 듣고 있으면 잠이 솔솔 온다. 나뭇잎이 바람에 부딪히는 소리와 풀잎이 바람에 부딪히는 소리가 서로 다르다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소리는 장소를 드러낸다. 유럽의 레스토랑 야외 테이블에서 식기 부딪히는 소리가 사람들이 식사하며 대화하며 재잘대는 소리와 함께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걸 듣다가 컴퓨터 게임을 하며 들었던 배경 소리가 유럽산이었음을 알게 됐다. 한낮의 여름이면 들려오던 매미 소리,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 밤이면 더욱 커지던 개구리 소리가 베를린에서는 들리지 않으니 내게 제대로 된 여름이 없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집트 다합은 하루 다섯 번 쿠란을 낭송하는 기도 소리, 염소가 우는 소리, 모래 바닥을 밟는 발소리로 기억된다.

고든 햄프턴은 자연의 소리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데 평생을 바친 음향 생태학자다. 그는 지구에서 가장 고요한 곳에 찾아가 가장 희귀한 자연의 소리를 녹음해왔다. 그는 고요함을 단순히 소리가 없는 상태가 아닌 소음이 없는 상태로 정의하며 이를 통해 자연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인간이 시각적인 정보를 주로 사용하게 된 것은 도시의 소음 공해가 너무 심각하기 때문이라고도 덧붙인다.

그가 녹음한 희귀한 소리들, 이를테면 칼리하라 사막의 아프리카 뻐꾸기 소리, 먼 바다의 파도 소리가 가문비나무통나무의 내부를 울리는 소리, 하와이 할레이칼라 분화구에서 화산이 만들어내는 소리 등을 듣고 있다보면 즉각적으로 편안하고 개운해져서 이 소리들이 나라는 동물의 유전자에 뿌리 깊이 박혀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조용한 환경은 인간의 신경계를 진정시키고, 모든 정보를 명확히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 동물이 조용한 곳에서 안전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조용한 환경에서 더 개방적이고 수용적이 된다. 고요함 속에서만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자연이 파괴된다는 것은 고요함을 잃는다는 것이며 그것은 인간이 자신을 탐구할 공간을 영영 잃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며칠 전 나는 유대계 이탈리아인이자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를 읽다가 한 대목에서 오소소 소름이 돋았는데 그것은 수용소의 경험을 묘사하는 대목이 아니라 나치의 횡포가 심화되고 곳곳에 불길한 징조가 드러나는 와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삶을 누리기 위해 알아서 눈을 감았다는 대목이었다. 기괴한 침묵의 베일에 가려진 진실. 이것은 정확히 현재와 같지 않은가?

한국의 올여름을 겪은 사람은 기후 위기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기상관측 이래 최고’ ‘전례 없는 이상기후’는 앞으로도 전년의 기록을 갱신하며 계속될 것이다. 기후 위기는 가장 가난하고 가장 연약한 지점부터 천천히 망가뜨릴 것이다. 새우잡이배가 쓰레기 만선으로 돌아오고, 40도를 육박하는 폭염이 지속되고, 산불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기후 위기가 국가의 최우선 과제가 아닌 것은, 서울이 소음으로 가득 찬 곳이라 그런 것인가.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 고요함을 지키자. 기후 위기를 유발한 탐욕의 세계를 멈추자. 9월7일 서울 강남대로 일대에서 대규모 기후정의행진이 열린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싸워야 한다. 정말 그러하니까.

하미나 <아무튼, 잠수> 저자

하미나 <아무튼, 잠수> 저자

<하미나 <아무튼, 잠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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