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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자 한 자 눌러쓴 ‘항일의지’…독립운동가들, 편지로 돌아왔다

입력 2024.08.15 06:00

수정 2024.08.1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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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겸·최익현 등 육필 편지 13점

한일관계사료집·조현묘각운 등

미·일 환수 문화유산 3건 첫 공개

일제 경찰이 두루마리 형태로 만든 ‘한말 의병 관련 문서’를 일부 펼친 모습. 국가유산청 제공

일제 경찰이 두루마리 형태로 만든 ‘한말 의병 관련 문서’를 일부 펼친 모습. 국가유산청 제공

“분통하다” “눈물을 금할 수 없다”…꺾이지 않는 독립투혼 ‘생생’

일제에 맞서 목숨을 내걸고 항일 독립투쟁을 펼친 의병들의 육필 편지 등 관련 문서가 국내로 돌아와 처음 공개됐다.

일본·미국에서 환수된 이들 문서는 의병 등 당시 독립운동가들의 꺾이지 않는 항일 투쟁의지, 자주독립의 간절한 열망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특히 새로 확인된 유일본 자료로, 항일 독립운동사 연구에 획기적 사료라는 평가다. 일제 경찰이 빼앗아 보관한 이 문서들은 당시 의병, 독립운동에 대한 일본의 시각, 탄압 상황도 잘 드러내고 있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14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한말 의병 관련 문서’, <한일관계사료집-국제연맹 제출 조일(朝日)관계사료집>, 시를 나무 판에 새긴 시판인 ‘조현묘각운(鳥峴墓閣韻)’ 등 환수 문화유산 3건을 언론에 공개했다.

‘한말 의병 관련 문서’를 펼친 모습. 문서들 사이사이에는 일제 경찰이 기록한 글들이 첨부되어 있다. 국가유산청 제공

‘한말 의병 관련 문서’를 펼친 모습. 문서들 사이사이에는 일제 경찰이 기록한 글들이 첨부되어 있다. 국가유산청 제공

‘한말 의병 관련 문서’는 허위(1855~1908)와 허위의 셋째 형인 허겸(1851~1939), 이강년(1858~1908), 노재훈, 황순일, 연기우(?~1911), 윤인순(1880~1909) 등 항일 의병장과 독립운동가들이 작성한 편지 등 문서 9점, 유학자이자 의병장 유인석의 스승인 유중교(1821~1893)와 의병장 최익현(1833~1906)의 편지 4점 등 13점이다.

최익현의 편지 등 4점은 일제 헌병경찰이 1918년 4월 유인석의 시문집인 <의암집(毅庵集)>의 제작 현장을 급습해 빼앗은 것으로 확인됐다.

의병 문서들은 두 축의 두루마리 형태(세로·가로 각 35×406.5㎝, 35×569.5㎝)로 꾸며진 상태다. 두루마리에 덧붙여진 글을 통해 ‘芥川長治’(개천장치)란 이름의 일제 헌병경찰이 문서들을 수집했고, 1939년 8월 지금과 같은 형태로 꾸몄음을 알 수 있다. 두루마리 첨부 글에는 “이것은 일한(日韓) 병합 전후의 이면사에 관한 유일무이한 진사료(珍史料)”라는 내용도 적혀 있다.

임시정부가 국제연맹에 제출하기 위해 편찬했던 역사서 <한일관계사료집>.

임시정부가 국제연맹에 제출하기 위해 편찬했던 역사서 <한일관계사료집>.

당시 일제 헌병경찰이 압수
“의병 활동 기록, 귀중한 사료”

기증받은 ‘한일관계사료집’
3질밖에 안 남은 희귀 자료

13점의 문서는 ‘13도 창의군’(1907년 경기 양주에서 조직된 항일 13도 연합의병부대)에서 활동한 이강년이 1908년 1월5일(음력)에 허위에게 보낸 편지, 노재훈이 황순일에게 보낸 편지(1908년 5월24일)를 비롯해 연기우·황순일·윤인순의 편지·문서 순서로 정리돼 있다. 이어 허위가 일제 경찰에 붙잡힌 당일(1908년 5월13일)에 작성한 편지와 그 이전의 글, 허겸의 글, 유중교가 제자인 유인석에게 보낸 글(1876년 2월3일), 최익현(최기남)이 1851년·1876년에 유중교에게 보낸 편지 등이 모아졌다.

허겸이 동생 허위가 일제 경찰에 잡히고 4일 뒤 쓴 글에는 “분통하다”며 “마땅히 만 배나 분려(忿勵)하고 협력하며 (…) 서로 사랑하고 보호하기를 전보다 배가한 후에야 국권(國權)을 회복하고 생령(生靈)을 보전하며, 강토(疆土)를 온전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의병 부대들의 단합을 강조했다. 노재훈은 “우리 군사장 왕산 선생(허위)이 체포돼 눈물을 금할 수 없다”며 “무릇 전국 동지(同志)의 사람들이 어찌 각골명심(刻骨銘心)하여 흥복(興復)의 희망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겠습니까?” 등의 내용을 적어 투쟁 의지를 다지고 있다.

조선총독부에서도 일한 일제 헌병경찰인 개천장치는 각 두루마리에 ‘일본을 배척한 두목의 편지’ ‘폭도 장수의 격문’이라는 제목을 달아 당시 의병에 대한 일제의 시각을 잘 보여준다. 또 허위와 이강년을 체포한 사실, <의암집> 제작 현장을 급습한 사실 등도 기록했다.

박민영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구체적 활동 내용 등이 기록돼 학술적으로 귀중한 사료”라고 평가했다. 국가유산청은 환수와 관련, “이들 문서는 지난 7월 복권기금을 통해 일본에서 구입했다”고 밝혔다.

이날 공개된 <한일관계사료집>(전 4권 완질)은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국제연합(유엔) 전신인 국제연맹에 민족 독립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요구하기 위해 편찬한 역사서다. 편찬 당시 100질이 제작됐으나 현재 남아 있는 완질은 단 3질뿐인 희귀 자료다. <한일관계사료집>은 지난 5월 재미동포 홍영자씨가 “고국에서 가치 있게 활용되기를 바란다”며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에 기증했다. ‘조현묘각운’ 시판은 독립운동가 송진우의 부친이자 담양학교 설립자인 송훈(1862~1926)이 후손의 번창을 바라는 내용으로 쓴 시를 나무판에 새긴 것으로, 일본 도쿄에서 고미술 거래업체를 운영하는 김강원 대표가 지난 6월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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