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을지 자유의 방패(UFS) 연습이 시작된 19일 국무회의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반국가세력들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며 “혼란과 분열을 차단하고 전 국민의 항전 의지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북한은 개전 초기부터 이들을 동원해 폭력, 여론몰이, 선전 선동으로 국민적 혼란을 가중하고 국론 분열을 꾀할 것”이라며 “허위 정보와 가짜 뉴스 유포, 사이버 공격과 같은 북한의 회색지대 도발에 대한 대응 태세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이 UFS 연습 첫날 안보를 강조한 건 이상할 게 없다. 그러나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반국가세력 운운한 것은 뜬금없을뿐더러 막연하게 안보 불안 심리를 자극해 사회구성원 간 반목과 불신을 조장하고 정치적 반대 세력의 입을 틀어막는 명분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고 무책임하다. 1950년대 미국을 휩쓴 매카시즘 광풍의 작동 방식이 이와 같았는데, 그 출발이 체제 내부의 적에 대한 과대 망상이었다. 윤 대통령이 말하는 반국가세력은 대체 누구인가.
윤 대통령은 지난해 4·19 기념사에서 “독재와 전체주의 편을 들면서도 겉으로는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행세를 하는 경우를 많이 봐 왔다”고 했다. 그해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고 했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한 뒤 민생으로 방향을 트는가 싶더니 얼마 전 광복절 “사이비 지식인들이 반자유 세력, 반통일 세력”이라며 다시 ‘체제 내부의 적’을 겨냥하고 나섰고, 이날 발언으로 이어졌다. 지난 총선에서 참패하고 한동훈 체제 출범 후 여당 내 영향력도 예전 같지 않은 윤 대통령이 보수층을 결집시키려 다시 이념을 들고나온 걸로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민생위기, 의료대란 등 시급한 국정 현안이 한둘이 아니다. 국정을 책임진 대통령 입에서 언제까지 이런 시대착오적 이념의 독전가를 들어야 하나. 윤 대통령은 일제강점기를 근대화 시기로 미화하는 뉴라이트 학자를 역사·학술 기관장에 대거 발탁하고, 대일 굴욕외교로 광복절 경축식마저 두 쪽 냈다. 지금 국론 분열을 조장하는 세력이 누구인지 윤 대통령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