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한·일 강제 병합조약은 원천 무효”…광복회 “상응 후속 조치” 촉구

정희완 기자

광복회 전날 일본 식민지배 불법·무효 질의

외교부 “무효는 당초 효력 발생하지 않는 것”

1965년 한·일 기본조약 해설서 내용 설명

“이런 입장 앞으로도 변함 없을 것”

광복회 “답변에 상응하는 후속 조치해야”

이종찬 광복회장이 지난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열린 대일청구권 사회공헌 학술토론회 개회식에 참석해 최근 대한민국 독립과 건국을 둘러싼 갈등에 대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종찬 광복회장이 지난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열린 대일청구권 사회공헌 학술토론회 개회식에 참석해 최근 대한민국 독립과 건국을 둘러싼 갈등에 대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외교부가 23일 일본의 식민지배를 두고 “한·일 강제 병합조약은 강압적으로 체결됐고 이에 따라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정부 입장을 재확인했다. 또 향후 이런 입장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광복회가 전날 조태열 외교장관에게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무효 여부와 관련해 공식 질의 서한을 보내자 이렇게 답변한 것이다. 광복회 측은 외교부 답변을 긍정 평가하면서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철회 등 상응하는 후속 조치를 촉구했다.

외교부는 이날 광복회의 질의 내용에 대한 답변이 담긴 서한을 광복회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광복회는 전날 질의 서한에서 1965년 6월 체결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한·일 기본조약) 제2조 규정의 해석을 문의했다. 해당 조항은 “1910년 8월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는 내용이다. 1910년 8월22일은 국권을 강탈당한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된 날이다.

이 조항의 ‘이미 무효’ 문구를 두고 한·일간 입장차가 있다. 한국은 ‘이미 무효’가 1910년 한·일병합조약은 체결 당시부터 원천 무효였다는 점을 확인한 것으로 본다. 일본의 식민 지배는 애초부터 불법 강점이었다는 것이다. 반면 일본은 ‘이미 무효’라는 표현이 체결 당시에는 한·일병합조약이 유효했지만 1945년 8월 일본 패전으로 무효화한 것을 확인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에 따라 광복회 질의는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국권침탈이 불법이어서 무효’라는 정부의 입장을 확인해 달라는 주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외교부는 답변에서 1965년 7월5일 정부에서 발간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조약 및 협정 해설’에 담긴 내용을 언급했다. 정부는 당시 해설서에서 “소위 한·일합병조약과 그 이전에 체결된 모든 조약, 협정, 의정서 등 명칭 여하를 불문하고 국가 간의 합의 문서는 모두 무효”라며 “또 정부 간 체결된 것이건 황제간 체결된 것이건 무효”라고 밝혔다.

정부는 또 무효의 시점을 두고는 “‘무효(Null and Void)’라는 용어 자체가 국제법상의 관용구로서는 ‘무효’를 가장 강하게 표시하는 문구”라며 ‘당초부터’ 효력이 발생되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고 규정했다. 또 “‘이미’라고 강조돼 있는 이상 소급해 무효임을 두말할 필요가 없다”라고 강조했다. 해설서에는 “이 규정은 양국 간 불행했던 과거 관계의 청산을 뜻하는 가장 특징적인 규정”이라는 내용도 있다.

외교부는 “이 해설서에 기술된 우리 정부의 입장, 즉 한·일 강제 병합조약이 우리 국민의 의사에 반해 강압적으로 체결되었으며, 따라서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입장은 그간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라며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광복회가 외교부 측에 질의 서한을 보낸 건 최근 ‘건국절’ 제정 문제 등 역사 인식을 둘러싼 논란이 지속하자 정부가 이를 해소하기 위해 명확한 입장을 밝혀 달라는 취지이다.

광복회는 이날 외교부의 답변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광복회는 보도자료를 내고 “그동안 정부는 건국절 논란에 대해 소극적이고 모호한 대응으로 일관해 왔으나, 이번에 외교부가 ‘일제 지배 원천 무효’를 국민 앞에 공식 확인함으로써 대한민국 정통성과 정체성을 분명히 한 것으로 평가한다”라고 말했다.

광복회는 이어 “대통령실이 이에 상응하는 ‘국민이 신뢰할 만한 조치’를 취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건국 대통령’으로 띄우는 움직임과 ‘1948년 건국절’ 주장 등이 나오지 않도록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또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의 임명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관장은 앞서 “일제강점기에 우리 국민의 국적은 일본”이라 말했는데, 이는 한·일병합조약이 유효했고 일본의 식민지배는 합법이라는 인식이 깔린 것이란 지적을 받았다.

유민 광복회 대외협력국장은 통화에서 “김 관장의 주장은 이번 정부의 공식 입장과 배치되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임명이 철회돼야 한다”라며 “건국절 주장도 폐기토록 하는 등의 조치가 있어야 외교부의 이번 답변에 진정성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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