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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입력 2024.08.25 20:36

수정 2024.08.25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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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폭력·여성혐오 범죄 만연

각종 인터넷 사이트·채팅방…

폭력 부추기는 집단 있지 않나

‘중단하라’ 외칠 수 있게 교육을

누군가 ‘스톱(STOP)’을 외쳐야 한다

많은 이들이 걱정하고 있지만 드러내놓고 말하기를 꺼리는 것들이 있다. 여러 사람들이 불안해하지만 사회적 토론의 테이블에 쉽게 올려놓지 못하는 일들이 있다. 폭력과 범죄임이 분명하지만, 사건의 원인 규명과 행위자 처벌, 그리고 유사 범죄의 예방에 관해 공권력의 통제가 최소한에 그치는 사건들이 있다.

젠더폭력의 몇몇 사건들은 전형적 사례다. 헤어지기를 원하는 연인을 살해하거나,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 이성에게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위협한다. 강의실이나 캠퍼스에서 만나는 동료들의 신체를 딥페이크로 합성해 조롱하고,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후배들을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문자들로 희롱하는 단톡방을 들락거린다. 교제살인, 스토킹, 사이버 성폭력, 위계 성폭력이다.

성범죄가 아닌 일반적 폭력 범죄도 사건의 원인을 규명하고 발생의 맥락을 이해하려면 젠더라는 요인이 필요한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해 진주 편의점 여성 아르바이트 노동자에 대한 폭력이나, 최근 발생한 엘리베이터 안 30대 남성이 야구방망이로 일면식도 없던 여성을 폭행한 것은 여성혐오 사건으로 봐야 한다. 진주 편의점 가해자인 30대 남성은 스스로 신남성연대 회원임을 밝히며 머리가 짧은 여성은 페미니스트이므로 맞아도 된다고 공격했다. 엘리베이터 폭행 사건은 귀갓길 여성을 인근에서부터 따라와 폭행을 저질렀지만, 현실에 대한 불만이 그가 저지른 범행동기였다. 피해자 여성과는 전혀 상관 없는, 여성을 범죄의 손쉬운 대상으로 지목한 혐오범죄 사건이다.

이 모든 범죄들의 가해자와 피해자 성별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경찰은 올해 처음으로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 범죄’, 즉 전·현 배우자, 사실혼, 전·현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상대방에게 살해되거나 살해당할 뻔한 사건의 통계를 발표했다. 2023년 전체 살인 범죄 피해자 4명 중 1명(778명 중 192명, 24.6%)이 이런 범죄의 피해자였다. 그러나 다른 살인 범죄와는 달리 가해자와 피해자의 성별은 발표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아직도 이런 범죄의 원인이나 경과, 구조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듣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의 다수가 여성일 것이라는 사실만 짐작할 뿐이다.

범죄 가해자와 피해자의 성별을 밝히고 범죄의 증가 추이를 분석하자는 요구는 ‘젠더 갈라치기’가 아니다. 만약 다른 나라의 경우처럼 한국에서도 젠더폭력 가해자의 다수가 남성이라면, 그리고 유사한 범죄들이 계속되고 있다면, 이것은 폭력과 범죄를 재생산하는 구조적인 요인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사회학의 고전적인 범죄이론 중 하나인 차별적 교제이론은 개인의 일탈이나 범죄는 유사한 행동을 공유하는 집단과 지속적으로 가까워짐으로써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의 원리다.

혹시 극소수지만 여성혐오와 폭력을 부추기는 집단이 있는 것은 아닌가? 인터넷 커뮤니티일 수도 있고, 개인들의 단톡방일 수도 있다. 만약 누군가가 호기심으로 접속했다면 그는 우연이든 필연이든 폭력과 범죄 행위에 노출될 것이고 동조의 압력을 받을 것이다. 1200명이나 참가했다는 A대학 단체 채팅방에서 동료 여학생들의 딥페이크 합성물에 접한 학생들 중에는 불쾌해하거나 분노한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여성혐오이자 폭력이라고 의심한 학생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단체’ 채팅방이라는 집단적 분위기 속에서 순응이나 동조의 압력은 그들 중 다수를 방관자로 만들어왔다.

이에 비해 B언론사 논설위원이 가담했다는 소규모 채팅방의 경우는 훨씬 더 죄질이 나쁘다. 이런 단톡방에서 여성에 대한 모욕을 일삼는 가해자들이 실제 오프라인 공간에서 조직문화에 어떤 나쁜 영향을 끼쳐왔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괴롭다.

누가, 어떤 집단이 혐오와 폭력을 부추기는지, 여성에 대한 범죄행위를 묵인하고 조장하는지 깊은 관심과 토론이 필요하다. 채팅방이나 인터넷 사이트라는 그들만의 음지 속에 결코 영원히 숨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야 한다. 비판적 시선을 가진 다수가 동조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방조자 위치에서 벗어나 용기 있게 대처할 수 있도록 방법과 수단을 제공해야 한다.

성폭력 범죄 예방과 대응에서 우리는 피해자보다 먼저 ‘스톱’을 외치라고 배워왔다. 이제 우리는 젠더폭력 전반에 대해 ‘스톱’을 외쳐야 한다. 더 많은 청년들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사슬에 묶이는 것을 막으려면, 더러운 유혹에서 벗어나 ‘중단하라’고 외칠 수 있는 인식과 용기가 필요하다. 이를 위한 교육과 제도를 만들려는 토론을 서둘러야 한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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