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0주년 경향신문

화내는 여자, 싸우는 여자, 사랑하는 여자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X

  • 이메일

보기 설정

글자 크기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본문 요약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화내는 여자, 싸우는 여자, 사랑하는 여자

입력 2024.08.28 20:46

수정 2024.08.28 20:48

펼치기/접기

밤길을 조심해야 한다. 묻지마 범죄를 당할 수도 있으니까. 화장실을 이용할 때 조심해야 한다. 몰카에 찍힐 수도 있으니까. 연애상대를 신중히 골라야 한다. 이별을 고했다가 살해될 수도 있으니까. 조심한다는 사실이 티 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페미’로 낙인찍혀 조리돌림당할지도 모르니까. 여성혐오 범죄의 빈도를 과장하는 것 같은가. 최근 한 달로 아주 좁게 범위를 제한해도 지금 조심해야 한다고 열거한 일들의 실제 사례를 기사에서 모두 찾아볼 수 있다. 이제는 조심해야 할 요소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SNS에 올린 사진이나 증명사진이 퍼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불법 합성물(딥페이크) 성범죄에 악용될 수 있으니까.

딥페이크를 이용해 불법으로 제작한 성착취물을 유포하는 일명 ‘지인 능욕방’이 최근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여성의 사진을 보내면 음란물을 합성해주는 텔레그램 채널의 가입자가 무려 22만여명이라고 한다.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 학교 명단에 포함된 학교는 100개 이상이며, 이 학교들을 대상으로 점검한 결과 최소 40곳에서 실제 피해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를 비판하는 기사를 쓴 기자나 이러한 범죄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하려 노력하는 교사들까지 마구 합성하라는 채팅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을 더한다. 그런데 어떻게 조심할 수 있을까? SNS에 사진을 올리지 않더라도 졸업 앨범에 실린 사진까지 악용하고 몰래 찍은 사진으로 합성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피할 수 있다는 말인가. 피해자가 무작위로 선택된다는 점에서 성범죄는 일종의 테러리즘과 같다는 수전 그리핀의 의견에 동의하게 된다.

N번방 사건이 터졌을 때, 우리는 불안했고 분노했다. 여성들이 처음 본 남자에게, 애인에게, 남편에게, 스토킹범에게 아무 죄도 없이 맞거나 죽임당할 때마다 우리는 울분을 토했다. 처벌을 강화하고 성차별을 해결해나갈 방침을 마련하자고 외쳤다. 조심하고 두려움에 떨며 분노하기를 무한정 반복해왔다. 그런데도 계속, 새롭게 진화한 형태의 혐오범죄가 나타나고 또다시 화내고 싸워야 한다니 막막해진다. 그 과정에서 여성들이 체념과 무기력을 배우게 되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괴로움을 뜻하는 ‘anguish’와 같은 어원을 지닌 분노(anger)는 감정의 주체를 아프게 한다. 어떤 때는 완전히 파괴하여 폐허로 만들기도 한다. 그런 고통 속에 상주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나 해사하게 웃고 밝은 이야기를 나누고 따스한 사랑 안에서 살아가고 싶어한다.

그렇다고 분노하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 그러한 물러섬이야말로 여성들을 그렇게 대해도 된다는 왜곡된 사고를 강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저서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바다출판사·2020)에서 미국 작가인 에이드리언 리치는 여성들이 “자신에게 너무나 적대적인 세상”에서 체화할 수밖에 없는 내면의 분노를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에이드리언 리치는 ‘어머니’로 특정하고 있지만 넓게 해석해 보자면) 선배 여성들이, 스스로 사랑하는 법을 익힐 수 있도록 매우 심오하면서도 용기 있는 사랑을 주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한 여성이 다른 여성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실제적인 가능성에 대한 자신의 의식을 분명히 밝히고 확장”함으로써 주어진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며 이는 “희생자 되기를 거부하는 것, 그리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여성들은 피해자의 자리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불법 합성물 피해를 당한 여대생들은 포기하지 않고 직접 가해자를 찾아내어 처벌받게 만들었으며 그 경험을 공유했다. 이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은 서로의 안위를 돌보며 용기를 나누고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우리는 싸우기 위해 단단히 주먹을 쥐되 그 안에 다른 손을 거머쥘 넉넉한 품을 남겨둔다. 그 견고한 사랑의 자세를 믿는다.

성현아 문학평론가

성현아 문학평론가

  • AD
  • AD
  • AD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경향신문 홈으로 이동
뉴스레터 구독
닫기

전체 동의는 선택 항목에 대한 동의를 포함하고 있으며, 선택 항목에 대해 동의를 거부해도 서비스 이용이 가능합니다.

보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보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뉴스레터 구독
닫기

닫기
닫기

뉴스레터 구독이 완료되었습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닫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닫기
광고성 정보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닫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