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수입 전기차 화재 이후 자동차 업체들이 배터리 셀 정보를 공개하고, 정부도 전기차 화재 방지 대책을 내놓는 등 ‘전기차 포비아(공포증)’를 없애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지만 불안감은 쉽게 가시질 않고 있다. 과연 전기차는 우리가 걱정하는 만큼 화재 발생 가능성이 클까. 혹시 잘못된 상식과 정보로 인해 막연한 공포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29일 현대자동차가 낸 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전기차 화재의 ‘오해와 진실’을 정리해봤다.
■전기차 화재 확산 속도 빠르고 온도도 높다?
전기차 화재는 배터리의 열폭주 현상을 동반해 온도가 1000도 이상으로 치솟아 내연기관 차량 화재보다 위험하고 피해가 크다는 주장이 많다. 이는 진실일까.
배터리 1킬로와트시(kWh)의 열량은 3.6메가줄(MJ)로 가솔린 1ℓ의 열량 32.4MJ보다 훨씬 낮다. 같은 용량이라면 열량이 높은 연료를 싣고 있는 내연기관 차량의 화재 확산 속도가 더 빠르고 차량 외부 온도도 더 높이 오른다는 것이다.
중형 승용차의 경우 가솔린차는 50ℓ 이상 되는 연료탱크를 장착한다. 같은 크기 전기차는 약 80kWh급 배터리가 탑재된다. 연료가 100% 채워진 상태에서의 열량은 각각 1620MJ, 288MJ로 같은 차급이라도 가솔린차가 지닌 에너지량이 전기차에 비해 높다.
한국방재학회가 2021년 발행한 ‘전기자동차와 가솔린자동차의 실물화재 비교 분석’ 논문에서도 이 같은 사실이 확인된다.
화재 실험은 구형 레이 가솔린차와 전기차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가솔린차는 3ℓ만 주유하고 전기차는 100% 완전 충전(NCM 배터리 16kWh) 조건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결과 가솔린차의 화재 확산이 더 빠르고, 외부 온도도 훨씬 높게 올라갔다고 논문을 밝혔다.
특히 두 차량 모두 실내 온도는 1300도 수준을 기록한 반면, 외부 온도는 가솔린차가 최고 935도, 전기차는 최고 631도로 차이가 났다.
가솔린차와 전기차 모두 높은 온도여서 불이 날 경우 옆 차량에 피해를 줄 수 있지만, 전기차 화재가 유독 높은 온도로 인해 주변에 더 큰 피해를 준다는 것은 ‘오해’다.
■반드시 열폭주 나타나는 것 아니다
‘전기차 화재는 열폭주 현상 때문에 진압이 힘들고, 차량이 모두 타야만 불이 꺼진다’고 알려진 주장도 전부 맞는 말은 아니다.
전기차 화재는 배터리뿐만 아니라 다양한 요인으로 발생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배터리가 아닌 기타 부품으로 발생한 화재는 배터리 열폭주를 수반하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배터리팩은 고도의 내화성, 내열성을 갖추고 있다. 배터리가 아닌 다른 요인으로 화재가 발생할 때 불이 배터리에 쉽게 옮겨붙지 않게 조치한 것이다. 혹여 배터리에서 화재가 발생하더라도 최신 전기차에는 열폭주 전이를 지연시키는 기술이 탑재돼 있다. 조기에 진압할 경우 화재 확산 방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화재 진압, 전기차가 오래 걸린다?
완성체 업체에서는 화재 완전 진압까지 걸리는 시간이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더 오래 걸려 피해가 크다는 것도 잘못된 정보라고 설명한다.
현대차 관계자는 “일부 전기차 화재에서 초기 진압은 단시간에 이뤄지더라도 이후 혹시 모를 배터리 화학 반응에 대비해 차량을 일정 시간 소화수조에 담가 놓거나 질식포로 덮어 모든 배터리 에너지가 소모될 때까지 관리한다”면서 “다만 이 과정은 소방청 관리하에 안전하게 이뤄지고 주변에 화재 피해를 확산시키지 않기 때문에 긴 화재 진압 시간에 대한 불안감을 갖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실제 전기차 화재의 특성 파악과 소방 기술 발전에 따라 화재 진압 시간을 줄여주는 여러 화재 진압 방법이 등장하고 있다. 소방기술 업체들도 전기차 화재 진압 시간을 10분 내외까지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는 기술을 앞다퉈 개발하고 있어 전기차 화재의 진압 시간은 점차 짧아질 것으로 보인다.
■1만대당 화재는 내연기관 차량보다 적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자동차 화재는 매년 4500건 이상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4800건으로 하루 평균 약 13건의 차량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 차량이 눈에 띄지 않거나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아 잘 알려지지 않을 뿐이지 차량 화재는 늘 발생하고 있다.
연도별 자동차 누적 등록 대수를 기준으로 보면 1만대당 화재 건수는 지난해의 경우 비전기차는 1.86건 발생했다. 전기차는 1.32건으로 내연기관 차량보다 수치상으로 낮다. 특히 전기차 화재 발생 비율은 비전기차에 비해 30% 정도 낮다.
현대차 관계자는 “소방청의 화재 통계는 충돌 사고, 외부 요인, 전장 부품 소손 등에 따른 화재를 모두 포함하고 있고 초소형 전기차, 초소형 전기화물차, 전기삼륜차까지 함께 집계된다”면서 “이런 요인을 제외하면 승용 전기차에서 고전압배터리만의 원인으로 화재가 난 사례는 훨씬 줄어든다”고 말했다.
■100% 완충은 불안하다?
최근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배터리 충전량 90% 이하의 전기차만 공동주택 지하주차장 출입을 허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배터리 충전량은 화재 발생과 연관성이 미미해 ‘충전량 제한’이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게 완성차 업체의 대체적인 목소리다.
현대차·기아 등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전기차 배터리를 100% 완전히 충전해도 충분한 안전범위 내에서 관리되도록 설계하고 있다고 밝혔다. 모니터상 충전율 100%는 실제로는 100%가 아니고, 만에 하나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배터리관리시스템(BMS)이 과충전을 차단하고 제어한다는 것이다.
윤원섭 성균관대 에너지과학과 교수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가 100%라고 말하는 것은 안전까지 고려한 수명”이라며 “배터리를 100% 충전하면 위험하다는 것은 일반인이 주로 오해하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현대차·기아 관계자는 “배터리 셀 제조사와 함께 품질을 철저히 관리하고, BMS를 통한 사전 진단으로 더 큰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배터리 이상징후 통보 시스템의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비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 지하주차장사 화재는 스프링클러 작동 가장 중요
지하주차장 등 실내에서 자동차 화재가 발생한 경우 전기차나 내연기관 차량 등 차종과 무관하게 스프링클러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지난 5월 전북 군산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는 스프링클러가 정상 작동해 45분 만에 진화됐고, 인접 차량은 2대만 화재가 아닌 소화 활동에 따른 피해를 보는 등 화재 규모와 피해가 크지 않았다.
또 전기차 화재에 특화된 하부 스프링클러까지 설치될 경우 배터리 열폭주 가능성이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반면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은 경우에는 내연기관 차량이라도 피해 규모가 커진다.
2022년 대전의 한 아웃렛 지하주차장에서 1t 트럭에서 시작된 화재로 7명이 사망하고, 수백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적이 있다. 2014년 용인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는 내연기관 차량이 불이 나 120여대의 차량이 피해를 봤다. 이 두 곳에서는 공통적으로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