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3일 열리는 ‘국제한반도포럼’은 윤석열 대통령의 ‘통일 독트린’에 맞춰 정부가 야심차게 준비한 행사다. 윤 대통령은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동맹 및 우방국들과 자유의 연대를 공고히 하면서 우리 통일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이 행사를 만든다고 말했다.
그런데 발표자로 초청된 콜린 크룩스 주한 영국대사가 불참하기로 했다. 이 행사의 연사가 모두 남성이라는 점을 문제 삼았다. 영국대사관은 지난 28일 “우리는 성평등을 중시한다. 참석자 관점의 다양성이 행사를 더 풍부하게 만든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크룩스 대사의 불참은 주최 측으로서는 큰 타격이다. 그는 2018~2021년 주북한대사를 지낸 한반도 전문가로 북한 인권 상황 등을 객관적으로 발언해줄 것으로 기대됐다. 주관 부처 통일부는 급하게 연사를 추가 섭외했으나, ‘19 대 0’의 남녀 비율이 ‘20 대 1’로 바뀌었을 뿐이다.
통일부는 크룩스 대사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능력에 따라 성별과 무관하게” 연사를 섭외하려 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구조적 성차별이 엄존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 말은 불평등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최근 집권한 영국 노동당이 ‘12 대 12’ 남녀 동수 내각을 꾸리며 불평등 타파 의지를 보여준 것과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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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가운데 크룩스 대사가 한국 부임 이후 3년 연속 참여한 행사가 있으니 그것은 성소수자 퀴어퍼레이드이다. 그는 지난 6월 제25회 서울퀴어퍼레이드에 보낸 영상 축사에서 “저는 한국과 영국 두 나라가 함께 협력하여 더 포용적이고 평등한 한국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언제나 사랑이 증오를 이깁니다”라고 또박또박 한국어로 말했다.
성평등 정책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 장관을 6개월 이상 비워둔 윤 대통령으로선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공유하는 우방국 대사가 북한 체제를 비판하고 한국 주도 통일을 위해 협력하자는 행사에, ‘겨우 성평등 가치를 이유로’ 이렇게 박절하게 나오는지 말이다. 윤 대통령이 이해하는 가치 외교와 영국 같은 서방 국가가 생각하는 가치 외교는 언제부터인가 많이 벌어진 것 같다.

콜린 크룩스 주한영국대사. 주한영국대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