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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행을 떠나며

입력 2024.08.29 20:15

수정 2024.08.29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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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한 철 안거가 끝났다. 길고 긴 장마에 유난히 덥고 힘들었던 하안거였다. 결제(結制)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항상 그렇듯 시간은 속절없이 잘도 흘러갔다. 안거를 마무리하는 해제일(解制日) 무렵이면 여러 가지 이유로 분주해진다. 스님들은 저마다 다음 철 수행처를 알아본다든지, 은사 스님이 계시거나 인연 있는 절로 돌아가기 위해 분주해진다. 어른 스님들은 결제와 해제가 다르지 않음을 매번 강조하지만 그럼에도 다들 매번 안거가 끝나면 수행의 진전과는 상관없이 나름 홀가분한 마음으로 산문을 나서게 된다. 해제 날 산문을 나서는 순간, 마치 자신이 구름이 된 듯 강물이 된 듯한 자유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전통적으로 선원, 강원, 율원이 모두 모여서 수행 안거에 동참하는 총림은 수행기관마다 특색 있는 마무리 풍경이 그려진다. 특히 이제 막 출가해서 사미 과정인 강원(승가대학)에서 정진하는 학인 스님에게 해제일은 산문 밖으로 치자면 한 학기가 마무리가 되고 일종의 방학이 시작되는 날이다.

그래서 해제일이 다가오면 다들 나름 무엇을 할지 계획을 세우면서, 어린 학인 스님은 말할 것도 없고 다들 들뜬 기색을 숨길 수가 없다. 그간 머물렀던 수행처를 깨끗이 청소하고, 입었던 승복을 수선하거나 밀린 빨래를 하고 깔끔하게 옷을 다림질하면서 해제 전날 밤늦게까지 도반 스님들과 이야기꽃을 피우곤 한다. 해제하면 어떤 스님은 바로 인연 있는 절에 가서 운력을 도맡아 하거나, 혹은 참선하기 위해 산철 안거에 동참하기도 한다. 또한 관심 있는 분야에 관한 공부를 깊이 하기 위해서 선지식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다들 방향은 다르지만 결국 자신이 한 철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준 세상의 인연에 그 은혜를 되돌리는 일종의 회향(廻向)인 셈이다.

한국 불교는 다른 여타 국가의 불교 전통과는 달리 뚜렷한 안거 전통을 오랫동안 이어오고 있다. 그러다 보니, 결제와 해제의 의미가 특별하게 다가오는데, 해제한다고 수행을 멈추는 것은 아니다. 해제와 결제 사이의 공백 기간은 ‘흩을 산(散)’자를 써서 ‘산철’이라고 하는데, 대중 스님들이 각자 모두 결제하는 동안의 수행처를 떠나 전국 방방곡곡의 수행처로 흩어진다. 하지만 만행은 의미 없이 떠돌아다니면서 흘려보내는 시간이 아니라 안거 동안의 수행을 점검하고 갈무리하는 과정이다. 안거 동안 공부가 미진하거나 아쉬움이 남는 수좌 스님들은 산철마저도 결제를 하고 집중 수행에 들어가기도 한다. 그 외에도 어떤 스님들은 만행을 떠나기도 한다. 만행(萬行)은 스님들이 수행처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다니면서, 보고 배우며 중생의 고통에 공감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옛 스님네들은 가을 수확철이 된 들판에서 농부들과 함께 벼 베기 일손을 돕기도 하고, 전염병이 도는 마을에 들어 병자를 구호하기도 하였다. 만행은 글자 뜻풀이 그대로 숫자 ‘만 가지 행위’로도 말할 수 있지만, 사실상 수행자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하는 과정에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예년 같으면 해제가 되면 대중 스님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큰절에 남아서 고요함 속에 한가함을 느껴보는 것이 개인적인 즐거움이었다. 학기 마무리 서류 정리나 그간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보지 못했던 책을 본다든가 산행하면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곤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해제일에 만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산문 밖, 사람들의 삶은 여전히 팍팍하고 힘들다. 서로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새삼 절실해지는 요즘이다. 이번 여름 다들 무더위는 견딜 만하셨는지 혹은 각자 일터에서 구슬땀을 흘리면서 집중했던 일들은 잘 이루셨는지 궁금하다.

사실 굳이 수행자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저마다의 일상과 일터에서 결제와 해제를 반복하고 있다. 이제 여름도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삶의 마디마다 매듭을 짓고 풀기를 되풀이하는 동안, 단순히 휴가에 머물지 않는 만행을 통해 세상과 교감하고 그들의 고통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보일 스님 |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보일 스님 |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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