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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평범한 이웃의 몫

입력 2024.09.02 20:43

수정 2024.09.02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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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강의하게 되면서 서 있는 자리의 변화를 실감한다. 박봉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강사 월급 때문은 아니다. 한 학기 동안 강의를 꾸려나가고 학생들의 지적 성장을 도와야 할 강사로서의 책임 때문이다. 어른이 되는 시기가 늦어지는 시대에 나는 여전히 청년세대에 속하지만, 어느덧 사회에 그저 도전하고 요구하는 것보다 사회에 대한 ‘책임’을 고려하게 된다.

그래서다.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범죄’를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 대한 책임이었다. 피해자와 가해자 다수가 10~20대라고 한다. 그들을 피해자와 가해자로 만든 것이 사회라면, 나는 이런 사회를 만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만약 피해자와 가해자가 같이 내 강의를 듣는 학생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피해자와 가해자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 얼굴을 하고 있다. 그것이 이 사태의 끔찍한 측면이기도 하다. 같은 교실에서 함께 생활하는 친구가 알고 보니 가해자라면 피해자는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가족을 대상으로도 성범죄가 벌어진다니 딸이 피해자, 아들이 가해자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물을 수밖에 없다. 학교는, 집은, 직장은 과연 안전한 공간일까? 친구, 가족, 동료가 피해자이고 가해자라면, 이 사태로부터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성폭력은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린다. 딥페이크 성범죄만이 아니라 성폭력은 많은 경우 가족, 친구처럼 피해자와 익숙한 관계에서 발생한다. 일상 곳곳이 위험으로 가득 차고 주변의 누군가가 나에게 은밀하게 악의를 품고 있다면, 대체 누구를 믿고 어디에서 안심하고 쉴 수 있을까? 마치 땅 전체가 흔들려 안전한 곳을 찾을 수 없는 지진처럼 익숙한 일상의 지반이 무너지는 것과 같다.

성폭력은 사회적 신뢰를 두 번 무너뜨린다. 피해사실이 부정당하기 때문이다. 이준석 의원은 딥페이크 성범죄가 별일 아닌 것처럼 그 의미를 축소했다. 한국사회는 이 사태의 무게에 비해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피해를 부정하고 응답책임을 방기하는 사회는 누구도 믿지 말고 알아서 자력구제 하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여성들이 겪는 사회적 신뢰의 붕괴는 왜 위급한 비상사태로 여겨지지 않는 것일까? 무의식적으로 여전히 여성을 인간에 미달하는 존재라고, 동등한 시민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여성들을 모욕하고 지배해야 할 하나의 몸뚱어리로밖에 보지 않기에 딥페이크 성범죄가 가능한 것처럼.

이미 무수한 전조 증상이 있었다. 지난 몇년 동안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 자신이 겪은 성폭력을 증언했던 여성들은 정확히 현재를 예언하였다. 하지만 그 시간을 모두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아파하며 통과한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여성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두고 역차별을 낳는다 역성을 내고, 피곤한 젠더갈등이라 치부하고, 자신이 손해를 보지 않는 선까지 동정을 베풀었다. 작금의 사태는 그 무수한 무책임들이 만든 결과다.

익명의 다수가 공모한 폭력은 마치 자연재해처럼 보인다. 운 나쁘면 당하는 것이다. 사회가 시민을 보호하지 않고 성범죄를 덮어둘수록, 여성들은 내리는 비를 피하는 데 급급하게 된다. 이 사태를 보도한 기자에게도 보복이 가해지는 실정이다. 그래서 태풍이 오면 창문에 청테이프를 붙이듯, 여성들은 자신의 SNS 계정에 올린 사진을 전부 지우고 있다.

그러나 이 사태는 자연재해가 아닌 인간의 폭력이 빚은 참사다. 몇몇 여성들은 성범죄를 끈질기게 추적해 은폐된 참사를 세상에 알렸다. 어떤 피해자들은 직접 가해자들을 추적했다. 이제 그들의 고발에 응답하고 이 참사에 책임을 지는 건 더 이상 그들만의 몫이 아니어야 한다. 성폭력이 무너뜨린 사회를 회복하는 건 평범한 이웃의 몫이다.

최성용 사회연구자

최성용 사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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