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딥페이크 성착취물 처벌 강화법 시행 이후 대법원 판결을 전수분석해보니 집행유예 판결은 4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딥페이크 성착취물 제작과 유포 행위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는 법이 만들어졌지만 정작 재판에 넘겨진 가해자에 대해선 제대로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 파장이 커지면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져 제작, 유포뿐 아니라 시청, 소지한 사람에 대해서도 형사처벌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지만 정작 그간 재판에 넘겨진 범죄자들에 대해서 제대로 처벌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성폭력처벌법 14조의2를 적용해 딥페이크 영상물 제작 등으로 처벌받은 사례를 전수 분석한 것은 처음이다.
4일 김남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법원을 통해 지난 4년간(2020년 6월 25일~2024년 6월 30일) 딥페이크 성착취물 제작과 유포 등으로 처벌받은 판결문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기소된 87명 중 집행유예가 34명(39%)으로 가장 많았다.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례는 24명(27.5%)에 그쳤고, 벌금형은 14명(16%)이었다. 선고유예와 무죄도 각 2명(2.2%)씩이었다.
딥페이크 영상물 제작과 반포 행위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성폭력처벌법 14조2는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 사건 이후 마련돼 2020년 6월 25일 시행됐다. 허위 영상물 등을 제작·반포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게 하고, 영리를 목적으로 제작·반포한 경우엔 7년 이하 징역으로 가중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판결문을 보면 제작이나 유포 행위가 일상적으로 이뤄졌는데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피해자들은 연예인, 지인, 중학교 동창, 친척, 친구의 여자친구, 일면식도 없는 사이 등으로 다양했고 연령대도 10대부터 60대까지 있었다.
인천지법은 2021년 여성 연예인 얼굴에 나체 사진을 합성하고, 45차례에 걸쳐 문화상품권을 받고 판매한 피고인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이 연예인 등의 얼굴을 그대로 옮겨 편집하지는 않았고, 합성한 사진들이 정교하지는 않다. 피고인은 구매자들에게 합성사진임을 고지하고 판매했고, 수익이 크지는 않다”는 이유를 들어 이같이 판결했다.
2020년 서울북부지법이 집행유예 선고한 경우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페이스북 계정 사진을 다운받은 뒤 텔레그램에서 합성을 의뢰했다. 피해자 사진과 이름, 연락처, 학교, 주소 등의 정보와 ‘걸레년’ 등의 문구를 적어 합성한 사진을 성인 사이트에 54회 게시했지만 처벌받지 않았다. 성기와 알몸을 합성한 사진을 불특정 다수에게 전송한 또 다른 피고인은 500만원의 벌금형을 받는 데 그쳤다.
징역형이 선고된 사례는 이런 허위영상물 제작이나 유포뿐 아니라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 주거 침입 등 다른 사건 혐의까지 합쳐진 경우가 많았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2020년 디지털성범죄 양형 기준을 세분화해 딥페이크 영상물 등의 반포 범죄도 추가했다.
그러나 이에 따라 가중 처벌이 적용돼도 징역 10개월에서 2년 6개월에 그쳐, 심각성에 비해 형량이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청 자료를 보면 허위영상물 범죄 발생 건수는 2021년 156건, 2022년 160건, 지난해 180건 등으로 계속 늘었고, 올해는 1월부터 7월까지만 297건이 신고돼 지난해 발생 건수를 이미 넘어섰다.
김남희 의원은 “범죄 행위가 상당한데도 가해자들은 초범이고 반성하고 있다는 이유로 감형받는 게 현실이다. 이게 디지털성범죄가 끊이지 않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 김 의원은 “딥페이크 영상물에 대해 제작과 유포 행위만 범죄로 보는 현행법을 개정해 소지와 시청하는 사람까지 모두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며 “양형기준도 정비해 가해자와 공조자들에게 경각심을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