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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의 ‘왜란 공신 선정’ 유감

“피로 쓰인 역사를 혀로 덮을 수 없다.”

지난 8월15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정부 행사와 별도로 79주년 광복절 기념식이 열렸다. 여기서 이종찬 광복회장이 했던 말이다. 기념사에서 그는 최근 진실에 대한 왜곡에 대해 광복회가 이 역사적 퇴행과 훼손을 보고 있을 수 없다며, 한 나라의 역사의식과 정체성이 흔들리면 국가의 기조가 흔들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로 쓰인 역사를 혀로 논하는 역사로 덮을 수는 없”고 “자주독립을 위한 선열들의 투쟁과 헌신 그리고 그 자랑스러운 성과를 폄훼하는 일은 국민들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며 “준엄하게 경고한다”고 했다.

위 기사를 읽으면서 한 장의 사진이 떠올랐다. 구글 이미지로 볼 수 있다. 1945년 백범 김구 선생(1876~1949)이 환국을 위해 중국 상하이 공항에 도착한 사진이다. 중앙에 김구 선생이 있고, 오른쪽에 초대 부통령을 지낸 성재(省齋) 이시영 선생(1869~1953)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그리고 김구 선생 앞 어린 소년이 바로 우당(友堂) 이회영 선생(1867~1932)의 손자 이종찬 광복회장이다. 1936년에 상하이에서 출생했으니, 10세 때 모습이다. 이회영 선생은 이시영 선생의 바로 위 형이다.

어떤 일에 대한 사후 평가는 그 일 자체를 평가하는 현재 상황을 더 크게 드러낼 때가 적지 않다. 임진왜란 직후 이루어진 공신 선정도 그랬다. 임진왜란 후 조선 조정은 선조를 뒤따른 유공자를 호성공신(扈聖功臣)으로, 전공을 세웠거나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공을 세운 인물을 선무공신(宣武功臣)으로 선정했다. 그런데 이 공신 선정 과정과 결과가 정상적이지 않다. 우선 공신 선정이 1601년 3월에 시작되어 1604년 10월까지 진행되었다. 무려 3년8개월이 소요되었다. 공신 선정 과정이 순탄치 못했음을 반영한다. 선조와 신하들의 의견이 일치되지 않았던 것이다. 또 공신 선정 결과도 이상했다. 전쟁의 가장 큰 공은 마땅히 전장에서 싸운 사람의 공이다. 그런데, 호성공신이 86인이나 선정된 반면에 선무공신은 18인에 불과했다.

왜란 중에 선조 곁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라면 류성룡과 그 뒤를 이은 이원익을 들어야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무려 31명이나 되는 2등공신에 끼어 있다. 더구나 호성공신에는 내시가 24명이나 포함되었다. 선무공신 1등은 3명인데, 이순신·권율과 함께 칠천량 해전의 패전 책임자 원균이 포함되었다. 임진왜란 중에 선조는 자신의 권위가 추락하고 이순신의 명성이 높아지자 계속해서 원균을 높이 평가하고, 신하들에게 그것을 강요했다.

특히 임진왜란 발발 초기인 1592~1593년에 선조는 회복하기 어려운 잘못을 저질렀다. 그는 왜군의 기세에 겁먹고 명나라로 망명하려 했다. 명나라에 사람을 보내 망명 의사를 전달하기도 했다. 이에 류성룡은 “임금께서 우리 땅을 단 한 걸음이라도 떠나신다면 조선 땅은 우리 소유가 되지 못합니다”라며 강하게 반발했고, 정철도 “전하께서는 압록강을 건너겠다는 말씀을 입 밖에 내시지 않아야 하고 마음속에서도 영원히 끊어버리시기 바랍니다”라며 망명 불가 입장을 명확히 했다. 백성과 사대부들 사이에 선조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널리 퍼졌다. 이에 선조는 공신 선정을 통해 추락한 왕권을 회복하려 했던 것이다.

선조는 나라가 회복된 것이 명나라 군대의 힘에 의한 것이고, 전쟁에 가장 큰 공은 명나라 참전을 이끌어낸 것이며, 그 주역은 바로 자신임을 공신 선정을 통해 관철시켰다. 전쟁의 가장 큰 공로가 전장에서 싸운 사람이 아니고 명나라 참전을 이끌어낸 사람이라는 것이 선조의 임진왜란에 대한 이해 방식이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피로 쓰인 역사를 혀로 덮을 수는 없는 법이다. (정해은, <충무공 이순신과 선조>, ‘이순신연구논총’ 11(2009) 참조)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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