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사랑해서 그랬다’는 거짓말을 믿나요
현행법, 사안따라 그때그때 만들어진 것
피해 지원서 겹치거나 빠진 부분 많아
‘여성 폭력’ 포괄할 수 있는 근거 세워야
친밀한 관계에 의한 폭력·살인 등의 범죄를 강력하게 처벌하자는 주장은 오랫동안 제기됐다. 하지만 대선 후보 시절부터 ‘여성에 대한 구조적 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라고 주장한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여성 폭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는 더 떨어졌다. 법을 정비해 처벌의 근거를 마련해야 할 국회에선 관련 법이 발의됐다가 논의도 한 번 없이 번번이 폐기됐다.
5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보면 2016년 개원한 20대 국회 이후 현재 22대 국회까지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 처벌 강화 등을 담은 법률이 발의된 것은 총 9건이다. 현행 가정폭력처벌법을 개정해 결혼하지 않은 연인 관계인 경우도 처벌 대상에 포함하거나, 아예 ‘데이트폭력방지법’ ‘교제폭력처벌법’ 등을 신설하자는 방안이다.
여기에 형법상 교제폭력의 기준을 마련하고, 피해자 보호 절차와 지원기관 운영에 필요한 사항 등을 규정하자는 의견이 더해졌다. 또 피해자가 협박이나 보복 우려 등 이유로 가해자와 합의했을 경우 이를 처벌하지 않도록 한 ‘반의사 불벌죄’ 조항을 적용하지 않는 내용도 담겼다.
그런데 이들 법안은 발의 이후 모두 소관위원회에서 제안 내용을 설명하는 데 그치고, 본회의에선 한 번도 논의된 적이 없다. 21대 국회 발의안까지는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22대 국회가 개원한 뒤에도 교제폭력의 심각성이 잇따라 보도되면서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실질적인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앞서 경남 거제에서 벌어진 교제폭력 사망 피해자 이효정씨의 어머니 손은진씨가 관련 제도를 개선해달라며 국회에 청원한 내용은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지만, 이 역시 논의가 더디다.
지난 7월24일 법사위 회의록을 보면 이화실 전문위원은 “교제폭력은 관계의 특수성으로 인해 살인 등 중대범죄로 확산될 우려가 높으므로 이를 반영한 범죄 처리 절차와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며 “기존의 가정폭력처벌법 또는 스토킹처벌법을 개정하는 방안과 별도의 특례법을 제정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현재 3건의 법률안이 회부돼 있으니 이를 바탕으로 심사할 필요가 있다”고 당위적인 내용을 짚는 데 그쳤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법안 개정이냐, 신설이냐라는 방법론적인 논의 외에 여성에 대한 폭력을 포괄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근거 정립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수정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장은 “현재 가정폭력처벌법, 스토킹처벌법, 여성폭력방지기본법 등으로 친밀한 관계 범죄를 처벌하도록 하지만, 사안이 나올 때마다 그때그때 법안이 만들어지다 보니 피해 지원 체계에서 겹치거나 빠져 있는 부분이 많다”며 “가정폭력처벌법은 목적 자체가 가정의 유지와 보호이고, 사실상 혼인·혈연·입양 외의 친밀한 관계를 포괄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크다. 궁극적으로 이를 개정하지 않으면 새로운 법안을 만들어도 비슷한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물리적인 폭행 외에 상대를 정신적으로 압박하고 행동의 자유를 빼앗는 ‘강압적 통제’까지 법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은 “친밀한 관계 폭력의 본질은 상대의 일상에 대한 간섭과 규제, 모욕, 지인으로부터 고립시키기 등의 통제”라며 “교제폭력과 가정폭력은 이름만 다를 뿐 그 핵심은 유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신체적 폭력만 처벌하는 현행법은 피해자 중 소수만 보호한다. 친밀한 관계 폭력의 본성을 제대로 이해한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김정화 기자 clean@kh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