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고 또 깎겠다…“이젠 예산으로 견제” 벼르는 야

윤호우 선임기자

민주당, 예산 삭감 넘어 정부기관 운영비 전액 삭감까지 이례적 거론

입법권 무력화에 ‘예산권’ 전가의 보도 쓸 듯…‘의대 예산’은 새 논란

한덕수 국무총리(앞줄 오른쪽)와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앞줄 왼쪽) 등 국무위원들이 9월 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위원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앞줄 오른쪽)와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앞줄 왼쪽) 등 국무위원들이 9월 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위원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주간경향]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와 방송심의위원회(방심위)의 내년도 예산에서 인건비를 제외한 운영예산을 전액 삭감하겠다.”

지난 8월 2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과방위)에서 정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김태규 방통위원장 직무대행에게 예산 삭감을 경고했다. 정 의원은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예산을 가지고 언론 자유를 침해하고 방송의 독립을 해친다면 거기에 예산을 지원할 이유가 없다”고 삭감 이유를 댔다. 그동안 정부·여당 추천위원 2인으로만 구성된 위원회로 방송 장악에 몰두했다는 비판을 받아온 방통위에 날카롭게 ‘예산 칼질’을 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정 의원은 자신이 과방위 예산결산소위 위원장임을 상기시키며 방통위 운영예산 34억원과 방심위 경상비, 방송심의활동비 등 130억원을 삭감 대상으로 언급했다.

‘준예산’ 사용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역대 어느 국회에서나 야당은 예산 삭감을 ‘무기’로 정부를 압박했지만, 정부기관의 운영비 전액 삭감까지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22대 국회에서 여야가 강경하게 맞부딪치면서 온갖 좋지 않은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면서 “특정 기관의 운영예산 전액 삭감 주장이 엄포성 발언이라고 웃어넘기기도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야당이 운영예산 대폭 삭감을 시도하고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예산안 통과가 제때 되지 않는다면, ‘준예산’을 사용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야당 강경 지지층이 정 의원의 운영예산 전액 삭감 주장에 뜨거운 호응을 보내면서, ‘예산 국회’를 앞두고 협상파 의원들보다 강경파 의원들의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기관의 운영예산을 전액 삭감한다는 엄포는 철저히 정치적인 공세일 뿐”이라며 “예산 삭감도 상식적인 선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논리라면 국민의 비판을 받는 국회의 운영예산도 전액 삭감돼야 하며, 그렇게 되면 입법부는 아무 일도 못 하게 된다”고 말했다. 행정부든, 입법부든 정치 공세는 펼칠 수 있지만 예산 전액 삭감으로 정부기관의 기능 자체를 마비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은 “야당에서는 이진숙 방통위원장이 업무를 시작하자마자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는데, 방통위 운영예산 삭감 역시 비슷한 의도로 비친다”면서 “정부가 부당하게 쓰는 예산을 삭감시켜야지, 운영예산까지 대폭 손을 대겠다고 하면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667조4000억원)은 통과까지 어느 때보다 험한 가시밭길을 걸어야 할 운명이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세 번째 예산안인데, 거대 야권이 포진한 22대 국회에서는 첫 예산안이다. 이번 국회에서는 ‘야당 주도의 법률안 국회 본회의 통과→윤석열 대통령 법률안 거부권 행사→본회의 재의안 부결’이 되돌이표처럼 반복되는 것이 공식이 돼버릴 정도로 여야가 대치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잇따른 거부권 행사로 ‘입법권’이 무력화된 22대 국회에서 야당이 내년도 예산안을 놓고, 정부를 향해 ‘전가의 보도’를 사용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민주당의 예산안 전략을 진두지휘할 진성준 정책위 의장은 “불요불급한 예산은 그야말로 악 소리가 날 만큼 과감하게 삭감할 것”이라고 지난 8월 29일 정책조정회의에서 공언했다. 이른바 ‘현미경 심사’로 예산안을 세세히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지난 8월 말 국회 각 상임위에서 2023년도 예산을 결산 심사할 때도 윤석열 정부의 예산을 삭감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 개진됐다. 국방위에서는 부승찬 민주당 의원이 “2023년 국군의 날 행사 때 집행내역이 99억4000만원이라고 돼 있는데, 예산 전액 삭감 의견을 올리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예산과 관련해서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 증축된 드레스룸과 사우나 시설 설치 공사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 비용으로도 예비비 86억7000만원이 추가로 사용돼 예비비를 쌈짓돈처럼 쓴 것으로 드러났다. 법사위에서는 정청래 위원장(민주당)이 검찰 특활비와 관련해 “집행내역을 제출하지 않으면 전액 삭감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권력기관 특활비는 가장 ‘뜨거운 감자’

윤석열 정부의 권력기관과 관련된 예산과 관련해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논란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검찰, 법무부, 감사원, 대통령실의 경우 야당 의원이 법사위원장을 맡고 있어 내년도 예산을 놓고 더욱더 요란한 격전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국민의힘은 야당이 권력기관의 예산을 대폭 삭감하려 하자 “권력기관 길들이기”라고 비판했다. 올해 역시 마찬가지지만, 22대 국회에서는 야권의 입법 권력이 더 세짐에 따라 국민의힘은 권력기관 예산 지키기에 더 많은 힘을 써야 한다.

권력기관의 특활비는 가장 ‘뜨거운 감자’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은 “운영비는 증빙 결산이 가능해 삭감이 정치적 공세로 비칠 수 있지만, 특활비는 투명성 문제가 있어서 기관 운영예산과는 다른 시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예산 편성이나 증액을 하는 다른 나라 입법부와 달리 예산 삭감만이 우리나라 입법부의 고유권한이기 때문에 입법부가 행정부를 통제하는 유일한 압박 수단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검찰수사, 감사원 감사, 권익위 조사, 방통위 운영 등 특정 권력기관의 중립성·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예산 차원의 입법부 견제가 필요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정창수 소장은 “특활비는 투명성이 우선이며, 특활비 사용 목적에 관한 판단 부분은 그다음의 논란”이라고 말했다.

내년도 예산안에서는 의대 입시 정원 확대 관련 예산이 새롭게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의대 신입생 급증으로 인한 의대 교육 여건 개선 예산을 대폭 확보해야 한다. 고민정 민주당 의원은 국회 교육위에서 이주호 교육부 장관에게 의대 증원으로 향후 몇 년간 약 6조5000억원을 확보해야 하는데 가능하냐고 캐물었다. 최병천 소장은 “야당으로서는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이 분명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무능에 대해서만 비판할 뿐 의대 관련 예산은 소극적으로 동의하는 방안을 선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부와 의사, 양쪽을 비판하는 양비론 속에서 현실을 도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년도 예산안에 대해 정창수 소장은 “여야가 정쟁적 시각에 벗어나 예산안 통과에서도 ‘정치’의 정신을 살려야 하며, 부적절한 정부 예산을 삭감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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