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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사회’ 우려 키우는 신임 인권위원장

절대적 진리, 억압의 역사 불러
참혹한 ‘종교전쟁’이 그 증거
새 인권위원장, 종교적 신념에
공적 자리서 성소수자 혐오 발언
이성의 오류 가능성을 열어놔야

20세기 정치사상을 들여다보면 ‘냉전 자유주의’라는 흐름이 있다. 말 그대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이 대립하며 체제경쟁이 시작되자 이 여파가 만들어낸 자유주의 흐름이다. 그 시작을 대표하는 인물이 과학철학자 칼 포퍼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해, 1945년에 출간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포퍼는 과학적 사고로 20세기 유럽을 지배한 사상인 ‘나치즘’과 ‘마르크시즘’을 향한 무자비한 비판에 나섰다. 여기에서 포퍼는 자유주의를 ‘열린 사회’로, 나치즘과 마르크시즘을 ‘닫힌 사회’로 규정했다. 열린 사회와 닫힌 사회의 차이는 명확했다. 열린 사회는 누구나 ‘이성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은 ‘오류 가능성’을 품고 있다.

이런 오류 가능성이 일반적이라면, 우리 삶에서 어떠한 주장이나 의견도 ‘절대적’ 우월성을 가질 수 없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으면 타인에 대한 불합리한 억압은 가능하지 않다. 오히려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다원주의 사회에 이르게 된다.

반면 ‘닫힌 사회’는 역사의 순리로서 절대적 진리를 받아들인다. 나치즘은 게르만 인종이 이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인종적’ 역사주의를, 마르크시즘은 노동자 계급이 모두가 평등한 세계를 이루리란 ‘계급적’ 역사주의를 절대적으로 받아들인다.

이 세계에 절대적 진리가 존재한다면, 그것이 역사의 순리라고 한다면, 나아가 우리가 그것을 실현하고자 한다면,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는 일은 필연적이다. 누군가는 자신이 그 역사를 실현하는 선택된 인간이라 여기게 되고,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희생은 어쩔 수 없는 불행한 일로 취급될 뿐이다. 포퍼는 이렇게 절대적 진리를 구현하려는 신념을 ‘전체주의적 사고’라고 규정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절대적 진리를 구현하려는 신념은 늘 혼란과 갈등, 폭력을 부추겼다. 특히 종교가 그랬다. 서구의 역사만 봐도, 성경의 말씀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이 참혹한 종교전쟁을 불러일으켰다. 심지어 지구가 태양의 주변을 돈다는 주장만 해도 고문을 가하고 화형에 처했다. 망원경에 눈만 갖다 대도 알 수 있는 사실이 신의 이름으로 기각됐다.

소위 국가와 교회의 분리는 단순한 정치와 종교의 이별이 아니었다. 서로가 다른 신념을 가진 세계에서 절대적 진리를 주장하는 이들이 정치적으로 갈등하기 시작하면 다 죽는 수밖에 없다는, 절대적 진리가 교회 안에 머물 때 세속의 세계가 안전하다는, 절실한 경험의 산물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새로이 임명된 안창호 인권위원장 때문이다. 공안검사 출신에다 여러 반인권적 발언으로 임명 전부터 자격 논란을 불러일으킨 인물일 뿐만 아니라, 특히 종교 편향 발언은 상당히 우려스럽다.

“여러분들이 학교에서 무비판적으로 진화론을 배우는데 배울 필요가 없다. 오래돼서 정확한 기억은 안 나지만 내가 대학교 때 본 책에 의하면 진화론의 가능성은 0%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 창조론을 믿기 싫기 때문에 그냥 진화론을 주장하고 그러면서 자신들의 생각들을 거기에 붙여서 이야기했다.”

신임 인권위원장이 2021년 2월 인천의 한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한 발언이다. 무비판적으로 진화론을 배우는 일을 비판하면서 그 증거가 대학교 때 본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는 책이다. 다른 이가 진화론을 믿는 이유는 과학적 증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싫어서이다. 절대적 진리를 단호히 믿는 종교 근본주의자일수록 자기 주장의 근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신의 말이 ‘오류 가능성’이 제로인 진리 아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진리 밖에 있는 이들의 주장은 엄격한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그들이 진리를 싫어하는 어리석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제2조에서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이란 구절로 시작해 차별받지 않아야 할 항목에 대해 길게 나열하고 있다. 그중 종교가 2번째로 등장하는 이유는 그만큼 종교 편향이 차별의 원천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이 임명된 인권위원장이 우려스러운 대목은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공적으로도 서슴없이 내뱉어왔다는 데 있다. 여러 시민사회 단체들이 임명을 반대하고 사퇴를 촉구하는 주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열린 사회’의 ‘다원적’ 인권을 종교 근본주의자가 보호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아도 김용원, 이충상 상임위원의 비상식적인 말과 행동에 시달리고 있는 인권위원회가 더 큰 위기에 빠졌다.

김만권 정치철학자

김만권 정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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