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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위한 것이 곧 나를 위한 일이다

[하리하라의 사이언스 인사이드]남을 위한 것이 곧 나를 위한 일이다

퀴즈 하나, 인간의 몸에서 빨간색이고 통통하며 만지면 뜨겁고 아픈 데다 마음먹은 대로 잘 움직이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정답은 염증(炎症, inflammation)이다. 충혈, 부종, 열감, 통증, 기능 저하는 염증의 5대 특성이다. 염증은 괴롭다. 라틴어 ‘flamma’는 불꽃이라는 뜻이며, 한자 염(炎) 역시도 불타다는 뜻이니, 염증은 이름 그 자체부터 뜨겁고 괴로운 것임을 내포하는 셈이다.

그런데 현대인들의 상당수는 염증을 달고 산다. 스트레스성 위염이나 알레르기성 비염, 역류성 식도염, 방광염, 인후염, 중이염, 관절염, 치주염 등등에 시달려본 적이 없는 이들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이에 따라 관련 시장도 엄청나다. 2022년 기준 글로벌 항염증제 시장은 1091억달러(약 145조원)에 달함에도 불구하고 매년 6.58%씩 커질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그만큼 각종 염증에 시달리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염증(炎症)이라면 염증(厭症)을 느낄 정도로 싫어하곤 한다.

염증의 입장에서는 이런 미움이 억울하기 짝이 없다. 원래 염증은 우리 몸이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하고도 가장 기본적인 면역 반응이기 때문이다. 염증 반응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인체는 심각한 면역 저하로 인해 더 큰 건강상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증이 미움받는 이유는, 염증 반응 그 자체가 아니라 정도를 넘는 과한 반응과 꺼지지 않는 스위치 오류 탓이다. 그다지 심각할 것 없는 침입에 과도하게 반응해 세포독성을 지닌 사이토카인을 대량으로 방출해 장기를 망가뜨리거나, 이미 염증의 원인이 제거되었음에도 만성적으로 염증이 지속되어 통증을 안겨주거나 해서 말이다.

특히 만성 염증은 가볍게는 일상의 가벼운 불편함부터 만성적인 통증으로 인한 삶의 질 저하, 신체 기관의 기능 저하를 거쳐 때로는 목숨을 위협하는 심각한 질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오죽하면 만성 염증은 만병의 근원이라 할 정도다. 그래서 현대의학에서는 만성 염증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를 진행 중인데, 의학과 생물학을 넘어 행동사회적인 연구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의 사회행동과학연구소는 특정 행동이 사람에게 심리적인 변화뿐 아니라, 신체 그 자체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여겼다. 이들이 주목한 것은 체내에서 자극에 반응해 염증 반응을 일으키는 것에 관여하는 52개의 유전자 그룹(CTRA)이었다. 과연 특정 행동이 이들의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미쳐서 염증의 정도를 조절할 수 있을까?

연구진은 지원자들을 무작위로 네 그룹으로 나누고 5주의 실험 기간에 각각의 그룹별 지침을 이수하게 했다. ‘타인에게 친절하기’(kindness-to-other) 그룹에 속한 이들은 적어도 주당 3회 이상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했고, ‘세상에 도움되기’(kindness-to-world) 그룹에 속한 이들은 같은 횟수로 불특정 다수를 위해 착한 일(공원의 쓰레기를 줍는 것 등)을 해야 했으며, ‘나 자신을 위하기’(kindness-to-self) 그룹에 속한 이들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일을 챙겨서 해야 했다. 마지막 그룹은 대조군으로 이러한 추가 지침 사항 없이 평소대로 행동하게 했다. 실험이 끝난 후, 어떤 그룹의 건강상 지표가 가장 많이 개선되었을까. 상식선에서 본다면, 자신을 위한 행동을 한 이들은 스트레스를 덜 받을 테니 염증 관련 유전자 발현 비율도 낮게 나타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연구 결과는 뜻밖이었다. 대조군에 비해 염증 유전자들의 발현 수치가 유의미하게 감소한 것은 ‘타인에게 친절하기’ 그룹이 유일했다.

기존에도 사회에서 고립되거나 외면받는 행동이 개인의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신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는 여럿 있었다. 이 연구는 그 반대의 경우, 즉 친사회적인 행동의 증가가 신체의 건강 상태를 개선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남을 위한 것이 곧 나를 위한 일이라는 오래된 격언이 그저 위로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실질적인 삶의 지혜인 셈이다. 나를 위한 대접은 마음의 만족을 주고, 타인을 위한 친절은 내 건강에 도움이 됨을 기억한다면, 삶의 균형을 지키는 것이 조금은 더 수월해지지 않을까.

이은희 과학저술가

이은희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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