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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사에서 ‘진보정당’은 무엇이었나

[최병천의 21세기 진보] 한국 정치사에서 ‘진보정당’은 무엇이었나

2024년 총선에서 정의당은 원내 진입에 실패했다. 2004년 총선에서 진보정당은 첫 원내 진입을 했다. 딱 20년이 지나 ‘원내 진보정당’의 시대가 저물었다. 현재 22대 국회에서도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정당들은 존재한다. 그러나 이들은 민주당이 주도해서 만든 ‘위성정당’을 통해 국회에 진입했다. 민주당 노선과 구분되는 ‘독자적’ 진보정당으로 볼 수 없다.

진보정당의 본격적인 출발은 2000년 1월30일 창당한 민주노동당이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의 초박빙 구도에서 약 100만표를 받았다. 이때 만들어진 유행어가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였다. 2004년 총선에서는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이라는 아주 근사한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약 13.1%인 280만표를 얻었다. 8명의 비례대표 의원과 2명의 지역구 의원, 합계 10명의 국회의원을 당선시켰다. 이때 국회에 들어갔던 의원들 중에는 한국 진보를 상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강기갑, 권영길, 노회찬, 단병호, 심상정, 천영세, 최순영 의원이 모두 그랬다. 국회법에 의하면, 국회의원이 법안을 발의하려면 10명이 필요하다. 민주노동당 의원 숫자는 마침 법안 발의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진보적인’ 법안을 대거 발의하게 된다.

‘압축 복지국가’를 주도하다

지난 20년을 돌아볼 때, 한국 정치사에서 진보정당은 어떤 의미가 있었던 것일까? 무엇을 해내고, 무엇을 해내지 못했던 것일까?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기 위해서는 한국 정치사에 대한 시계(視界)를 더 길게 조망해볼 필요가 있다.

1945년 해방 이후 지난 79년 동안 한국 사회는 수많은 이슈로 갈등과 대립의 시간을 보냈다. 그 과정에서 한국 사회는 4가지 업적을 달성했다. ①나라 만들기 ②압축 산업화 ③압축 민주화 ④압축 복지국가다. 나라 만들기(Nation Building)는 자본주의를 할지 사회주의를 할지, 미국과 한편이 될지 소련과 한편이 될지, 농지개혁을 할지 말지가 핵심 쟁점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는 세계사적으로 ‘냉전 질서’가 형성되는 초입기였다. 게다가 한반도는 지정학적 단층선에 위치했다. 한편으로 한반도는 분단, 전쟁, 학살의 공간이 됐다. 다른 한편으로 농지개혁을 실시해 지주·소작 관계를 청산하고, 미국식 자본주의를 수용하는 나라가 됐다.

지구상에는 약 210개 국가가 존재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식민지 경험 있는 제3세계 국가’ 중에서 4가지 업적을 동시에 달성한 나라는 딱 두 곳에 불과하다. 한국과 대만이다.

①나라 만들기 ②압축 산업화 ③압축 민주화 ④압축 복지국가의 업적을 세 글자로 줄이면 그게 바로 ‘선진국’이다. 나라 만들기와 압축 산업화는 상대적으로 ‘보수’가 주도했다. 한국 보수의 역사적 업적이다. 압축 민주화와 압축 복지국가는 ‘진보’가 주도했다. 한국 진보의 역사적 업적이다. 과거 리영희 선생님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표현했는데, 한국 정치사가 딱 해당한다.

국민의힘으로 상징되는 한국 보수가 사회 변화에 뒤처지지 않고 ‘다수파 정치세력’이 되고자 한다면, 압축 민주화와 압축 복지국가의 성취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철 지난 빨갱이 타령은 스스로를 ‘시대착오적인’ 세력으로 고립시킬 뿐이다.

민주노동당 이후 진보정당 20년은 이 중에서 ‘압축 복지국가’를 선도했다. 정책의 관점에서 민주노동당 노선을 해석하면 복지정책, 노동정책, 재벌개혁 정책으로 집약된다. 대중적 호소력이 가장 큰 것은 역시 복지정책이었다.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의 대표 공약이었던 ‘부유세, 무상의료, 무상교육’이 상징적이다. 이후 각종 ‘무상~ 정책들’이 탄생하게 된다. 민주노동당의 친복지, 친노동 정책은 참여정부의 좌절과 맞물려 ‘대안적 진보노선’으로 주목받게 된다.

1991년 소련 붕괴가 전 세계 좌파에게 충격이었다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전 세계 우파에게 충격이었다. 미국의 주류도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대한 반성적 목소리가 증대된다. 참여정부의 좌절, 민주노동당 노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맞물려 친복지, 친노동 정책은 더욱 힘을 받게 된다.

2013년에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민주노동당 노선의 1기 정부’였고, 2017년에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민주노동당 노선의 2기 정부’였다. 이들 정부는 모두 기초연금 강화, 무상급식, 반값 등록금,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등의 정책을 추진했다. 박근혜 정부는 담뱃값 인상 등 복지증세도 과감하게 추진했다.

민주노동당 노선의 점진적 수용사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 정치는 ‘민주노동당 노선의 점진적 수용사(史)’였다. 거꾸로 말하면, ‘복지정치의 주류화’가 실현됐다. 기존 정당이 정의당 정책을 수용했던 것이 정의당 몰락의 가장 큰 이유다. ‘정치적 차별화’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진보정당 몰락의 중요한 다른 축은 ‘지역주의 쇠퇴’다. 민주노동당 시절 ‘영남 진보벨트’라는 표현이 있었다. 동해안에서 남해안으로 이어지는 영남의 공업지대였던 포항, 울산, 부산, 거제, 마산, 창원 등 ‘동남권 제조업 벨트’를 영남 진보벨트라고 불렀다.

이들 지역은 노동조합이 활성화된 곳이었다. 이들 지역에서는 민주당 후보보다 진보정당 후보 득표력이 더 컸다. 영남에서 진보정당 후보는 왜 민주당 후보보다 많은 표를 얻었을까? 한 축은 노동운동의 힘이었지만, 다른 한 축은 ‘지역주의’의 힘이었다. 영남 유권자들은 ‘빨갱이당’ 후보는 뽑아줘도 ‘호남당’ 후보는 뽑지 않았다. 노동운동보다 호남이 더 싫었다. 20년 후 등장한 영남의 2030세대는 지역주의에서 자유로웠다. 이들에게 민주당은 호남당이 아닌 그냥 진보정당이었다. 민주노동당이 꿈꾸던 지역주의 정치는 쇠퇴하고 진보·보수 구도가 실현됐다.

한국 정치사에서 진보정당은 자신의 요구가 관철되어 자기 자신은 사라지는 ‘거름 같은’ 존재였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었다면, 그보다 큰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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