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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과 미완의 국가

추석 명절을 경주에서 지내고 광주대구고속도로에서 익산으로 차를 몰며, 문득 이 산하가 무덤 아닌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은 국가폭력으로 희생된 자들이 묻힌 거대한 공동묘지다. 얼마 전 여순사건 희생자들의 영혼이 떠도는 여수 만성리 용골에서 느낀 감정은 이를 더욱 생생하게 했다. 종산국민학교에 수용되어 있던 부역 혐의자 수백 명을 필두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학살되었다. 여수·순천만 해도 이런 곳이 50여 군데나 있다.

한 달 뒤인 10월19일이면 여순사건 76주기다. 과연 이 사건은 한반도 역사에서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건의 여파는 지금도 미치고 있으며, 완성되지 못한 국가를 후손들에게 물려주었다는 점이다. 희생자 수가 1200명에서 1만명일 것이라는 불명확한 통계처럼 이 사건의 정체성 또한 정치동향에 따라 오락가락한다. 분명한 것은 이승만이 이 사건을 발판 삼아 잔혹한 독재정권을 구축했다는 점이다. 국가보안법과 계엄법 제정은 물론, ‘빨갱이’를 만들어 국민보도연맹원 포함, 학살된 민간인이 100만에 이르듯이 국가 권력은 힘없는 백성을 법적 보호도 없이 무자비하게 처형했다.

과연 누가 옳았던가. 여순사건은 당시 우발적이었다. 그것은 청산되지 못한 일제강점기 유산 위에 수립된 국가 권력을 쥔 자들의 욕망이 촉발시킨 것이다. 그 뒤에는 미국이라는 제국의 힘이 작동했다. 14연대는 제주4·3 토벌작전 출동 명령을 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봉기했다. 여수 주요 기관을 점령한 ‘제주토벌출동거부 병사위원회’는 10월24일자 여수인민보 ‘애국인민에게 호소함’에서 “조선인민의 아들인 우리는 우리 형제를 죽이는 것을 거부하고 제주도 출병을 거부한다. 우리는 조선인민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싸우는 인민의 군대가 되려고 봉기했다”고 한다. 그 지역 노동자·농민으로 구성된 14연대는 적어도 군대는 외침을 막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미국에 굴종하는 이승만의 단독정부 수립으로 인한 분단의 영속성과 한·미 협정을 통한 미국 식민지화에 반기를 들었다. 6·25의 동족상잔은 일어났고, 미군은 한반도 남쪽에 주둔한다. 이승만은 국군통수권을 미국에 이양했고, 한국은 완전한 자주 국가의 평등한 외교권을 여전히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의 극복을 위해 계약에 의한 절대국가의 필요성을 말했지만, 그 국가 권력이 인민의 안전과 평화를 지키지 못할 때는 민중의 힘으로 폐기될 수도 있음을 14연대는 보여주었다. 대한민국은 반쪽짜리 정부다. 분단 고착으로 하나 된 통일의 희망을 무너뜨린 주범들은 누구였던가.

또 하나, 국가는 백성의 생각을 지배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해방정국은 이념의 해방구였다. 소련군과 미군 진주로 한반도는 갈라졌지만, 남쪽 대다수가 사회주의를 지지했다는 건 이미 알려져 있다. 많은 애국지사들은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이념의 힘을 빌려 독립운동을 했다. 이 사건이 토착 공산당인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의 기획이 아님은 잘 밝혀져 있다. 물론 그들의 단순한 저항이 좌익세력의 참여로 확대된 건 사실이다. 진압작전 지휘관들은 대부분 일본군과 만주군 출신으로서 친일경력을 세탁했다. 피아의 식별장치인 빨갱이를 통해 숙군을 이뤘다. 그리고 이는 ‘스네이크 박’(박정희)의 쿠데타, 전두환의 민주정부 탈취와 5·18광주민중항쟁에 대한 군대 투입 등의 반역행위로 이어졌다. 이념전쟁 수혜자는 결국 그들 군인이었다.

따라서 미국의 죄는 크다. 점령군인 미군은 3년 동안 남쪽 백성들을 일방적으로 반공전선에 서게 했으며, 이후 거의 모든 민간인 학살을 지휘하거나 방조했다. 서구에서 창안된 이념 간의 전쟁으로 300만명이 죽었다. 자기검열에 익숙한 백성을 상대로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반국가세력’이라는 말로 적을 판별하고자 한다. 이념에 증오의 색을 칠해 나라를 분열시킨 자들이 반국가세력임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하여 여순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원익선 교무 원광대 평화연구소

원익선 교무 원광대 평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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