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항소심 판결문에 나온 ‘주가조작 연락망’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해당 연락망은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과 주가조작 ‘주포(주가조작 실행 역할)’와 ‘전주’ 등이 유죄를 선고받게 한 핵심 증거 중 하나로 꼽힌다. 연락망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계좌를 받아 이를 주가조작에 이용한 주요 인물들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해당 연락망이 김 여사의 연루 의혹을 풀 단초가 될지 주목된다.
①주포→블랙펄인베스트→권오수 ‘연결망’
22일 경향신문이 확인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항소심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가 유죄로 판단한 2차 주가조작 작전(2010년 10월21일~2012년 12월7일) 시기의 연락망이 핵심 증거로 나온다. 해당 주가조작은 ‘주모자’인 권오수 전 회장을 주축으로 3년에 걸쳐 총 5단계로 이뤄졌는데, 2단계인 2차 작전 때 유일하게 급등세를 보였다.
연락망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4명이다. ‘주포 김모씨 → 블랙펄인베스트 임원 민모씨 → 블랙펄인베스트 대표 이종호씨 → 권 전 회장’으로 이어지는 연락체계다. 재판부는 블랙펄인베스트가 주가조작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다고 봤다. 블랙펄인베스트는 김 여사 계좌를 관리한 회사다.
주목할 지점은 김 여사 계좌가 해당 연락망에 등장하는 인사들의 연락에서 다수 언급된다는 점이다. 2010년 11월4일 블랙펄인베스트 임원 민씨가 이종호씨에게 주식 매수주문 체결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는데, 재판부는 이를 통정매매(通情賣買·서로 짜고 매매하는 행위)라고 봤다. “28~56초 차이로 같은 가격에 매수주문을 내고 체결한 매매”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 거래에 김 여사 이름의 계좌 등이 쓰여졌다는 점이다. 민씨는 2011년 1월13일 김 여사 이름의 증권 계좌의 인출액과 잔액, 매각 주식 수량 등을 담은 ‘김건희 파일’을 만들어 시세조종에 이용하기도 한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연락망 체계에서 김 여사가 자신의 계좌가 활용된 점을 스스로 인식했는지에 대한 부분까지 판단하진 않았다. 다만 도이치모터스 초기투자자이면서 권 전 회장과 ‘가까운 지인 관계’였던 김 여사가 이 연락망에서 배제돼 있기는 어렵지 않았겠느냐는 분석이 나온다.
김 여사는 1차 작전(2009년 12월23일~2010년 10월20일)이 있기도 전인 2007년 1월 ‘초기투자자’로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배정받았고, 2차 작전 때까지 자신의 명의 3개 계좌가 주가조작에 활용된 점이 이번 사건에서 드러났다.
향후 검찰 수사에서는 해당 연락망의 인물들과 김 여사의 관련 여부와 그 정도를 포함해 김 여사가 이 같은 연락망 체계를 알고 있었는지 등이 핵심 수사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②‘방조죄 유죄’ 손모씨와 뭐가 같고, 다른가?
이번 항소심 판결문에서 주목할만한 다른 대목은 ‘전주’ 손모씨의 방조 혐의가 유죄로 뒤집힌 점이다.
판결문에는 2차 작전시기 김 여사가 증권사 담당자에게 “그분한테 전화 들어왔죠?” “또 전화 왔어요? 사라고?” 등을 묻는 통화 녹취록이 나온다. 주포 김씨가 민씨에게 매도주문을 말한 직후 증권사 직원이 김 여사에게 매도 사실을 알려주기도 한다. 김 여사가 주식거래 일부를 파악하는 식으로 챙긴 점이 나온 것이다. 다만 재판부는 김 여사가가 해당 거래를 스스로 판단해서 직접 거래를 했거나, 증권사 직원에게 거래를 맡겨서 해당 직원이 계좌를 운용한 건 아니라고 봤다. 재판부는 그러면서도 “권 전 회장 등의 의사로 (주가조작에 김 여사 계좌가) 운용됐다”고 밝혔다. 계좌 자체가 주가조작 범죄에 이용되긴 했지만 실제로 김 여사가 이 주가조작 행위를 알고 있었는지 여부는 이번 사건 판결문 만으로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김 여사가 자신의 계좌를 직접 운용했다고 볼 수 없다는 재판부의 판단은 방조죄 혐의에서 유죄가 나온 전주 손씨에 대한 판단과도 연관된다. 당초 1심에서 재판부는 손씨의 행위가 “독립적 판단에 의해 거래한 것으로 보이고 시세조종에 관여한 것으로 볼 증명이 부족하다”고 무죄로 판단했지만, 항소심에선 계좌 운용 주체를 따져 유죄로 봤다. 손씨가 평소 짧게 매도·매수를 한 패턴과 달리 도이치모터스 주식은 유독 장기간 보유한 점 등은 “시세조종에 협조한 양상”으로 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주포 김씨의 진술 등을 종합해 “손씨가 주가조작 범행을 미필적으로나마 알고 있었다”고 판결했다. 자신의 계좌가 주가조작에 이용됐다고 판단이 나온 김 여사의 경우 이 범행을 ‘미필적으로 인식 또는 예견’ 했는지는 앞으로 검찰이 규명해야 할 핵심 사안이다. 구체적으로 알지 못해도 범행 일부라도 인식했거나 예견했는데 범행을 저질렀다면 방조죄가 인정된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검찰은 그간 수사를 통해 확보한 증거들을 토대로 김 여사에 대한 처분을 조만간 내릴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