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을 하면서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를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해 왔다. 그러나 최근엔 인권위에 기대는 일이 줄고 있다. 집회 현장에서 경찰이 인권침해를 하거나 차별이 발생했을 때, 인권위 진정을 생각했다가 그만두는 일이 많다. 인권위가 제대로 사건을 조사·해결할 수 있을지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통계를 보면 2024년 6월 기준으로 인권위 진정 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9.3%, 사건 처리 건수는 21.4%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검찰·경찰 등 권력기관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권고 건수는 3분의 1 수준으로 대폭 하락했다. 구체적으로 경찰 관련 사건 진정에 대한 권고는 16건으로 작년 대비 절반 이하로, 검찰사건의 경우엔 아예 권고 건수가 0건이었다.
이처럼 인권위의 위상이 추락한 이유는 분명하다. 바로 김용원, 이충상 두 상임위원의 전횡 때문이다. 두 상임위원이 각 침해구제 소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으면서 자의적으로 사건을 기각하는 일이 잦아졌다. 정의기억연대 수요집회 보호 진정에 대해 김용원 상임위원이 일방적으로 기각을 했으나, 법원에서 절차상 위법했다고 판결이 나온 게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럼에도 두 상임위원은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예 회의를 보이콧하기까지 했다.
문제는 이렇게 인권위가 망가지는 일이 이제는 차별 사건 처리에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인사청문회에서 “차별금지법이 도입되면 에이즈 확산, A형 간염 같은 질병의 확산을 가져올 수 있다” “성적지향에는 동성애뿐만 아니라 수간 등 다양한 형태도 포함된다”고 하며 혐오발언을 한 이가 인권위의 수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9월6일 제10대 인권위원장으로 임명된 안창호이다.
아직 위원장 임기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인권위 운영에서 바로 문제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인권기구를 대표한 이가 공개적으로 혐오발언을 한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지난 20일 국회 소통관에서 보수 기독교 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안창호 위원장의 발언을 옹호하며 동성애는 죄다, 유엔이 변질된 인권을 강요한다는 막말들을 쏟아냈다. 진화론은 제대로 입증되지 못했으니 창조론과 함께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는, 안창호 위원장이 인사청문회에서 한 반지성적 발언 역시 반복되었다. 이 기자회견이 조배숙 국민의힘 국회의원을 통해 국회에서 개최된 것은 혐오에 잠식된 정치의 현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안창호 위원장의 차별적이고 왜곡된 인식이 다시 증폭되어 나오는 상황에서, 인권위가 더 이상 인권침해와 차별에 대처하고 모든 사람의 존엄과 평등을 보호하는 인권기구로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드는 것은 당연하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며 현대적 의미에서의 인권의 중요성을 세계가 깨닫고 한국에서도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고자 2001년 설립된 인권위는 현재 최대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일련의 사태를 거치며 깨달은 것은 더 이상 문제 있는 인권위원, 위원장 한 개인의 책임을 묻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는 점이다. 후보추천위원회를 거쳤음에도 김용원 위원의 반인권적 행동이 제대로 검증되지 못했고, 국회가 인사청문보고서를 부채택해도 대통령이 안창호 위원장 임명을 강행하는 구조적 문제가 그대로 있는 한, 문제 있는 이들이 물러나도 제2, 제3의 안창호, 김용원, 이충상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인권위가 설립된 이유를 돌아보고, 설립 정신과 유엔 파리원칙에 비추어 독립적이고 전문적이며 다양성이 보장되는 인권위를 만들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법’ 등 법과 제도, 권위, 운영에 대한 원칙과 관행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대의 위기를 맞이한 지금이 인권위를 바로잡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사람’을 넘어 ‘인권위’의 구조적 문제에 집중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할 때이다.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