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공단, 대법원 판결에도 동성 부부 피부양 등록 접수 ‘반려’

오동욱 기자
윤모씨가 지난 24일 건강보험공단에 동성배우자의 피부양자 자격 취득을 신고한 뒤 받은 결과 통보서 내용. 윤씨 제공 사진 크게보기

윤모씨가 지난 24일 건강보험공단에 동성배우자의 피부양자 자격 취득을 신고한 뒤 받은 결과 통보서 내용. 윤씨 제공

대법원이 지난 7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소성욱·김용민 동성 부부 피부양 자격 박탈에 대해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라고 판결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건보공단은 여전히 사실혼 관계에 있는 동성부부의 피부양자 등록 접수를 반려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동성부부 피부양 자격 박탈이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공단의 태도는 변하지 않은 것이다.

26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건보공단은 동성부부인 윤모씨(43)가 건보공단 온라인 홈페이지로 접수한 배우자의 피부양자 자격 취득 신고를 지난 24일 반려했다. 건보공단은 “동성 배우자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해야 하는 기준과 관련해 대법원 판결을 검토하고 있고, 기준을 마련한 뒤 다시 통보한다”고 반려 사유를 밝혔다.

윤씨는 “인우보증서와 공증 서류, 가족관계증명서뿐만 아니라 덴마크에서 받은 혼인증명서까지 제출했다”며 “이성부부가 내는 사실혼 증명에 필요한 서류 외에 다른 것을 내는 것도 아닌데 어떤 기준이 더 마련돼야 하는 것이냐”고 말했다.

오승재씨가 지난 20일 건강보험공단 울산동부지사에 가서 ‘피부양자 취득 신청’ 민원을 낸 뒤 받은 접수증. 오씨 제공 사진 크게보기

오승재씨가 지난 20일 건강보험공단 울산동부지사에 가서 ‘피부양자 취득 신청’ 민원을 낸 뒤 받은 접수증. 오씨 제공

피부양자 자격 취득 신고 민원을 제출했는데 접수증에 민원 제목이 달리 기재되는가 하면 이에 대한 통보가 지연되는 일도 벌어졌다. 울산에 거주하는 오승재씨(25)는 지난 20일 건보공단 울산 동부지사에 직접 찾아가 동성 배우자 피부양자 자격 민원을 접수했다. 오씨가 받은 접수증의 ‘민원명’ 란에는 ‘자격관리에 대한 질의 및 진정’이라고 적혔다. 처리완료 예정일 란에는 ‘별도 통보 예정’이라고 기재됐다.

오씨는 “지사에서는 지침을 확인하고 안내해줘야 하는데 본부에서 지침이 안 내려왔는데 일단은 이렇게 접수를 한다고 했다”면서도 “피부양 자격과 관련해 질의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진정을 넣은 것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정부24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 취득 신고의 처리시한은 총 3일(영업일 기준)이지만 오씨는 민원 처리시한을 하루 넘긴 26일 오전까지도 “공단으로부터 어떠한 답변도 통보받지 못했다”고 했다. 오씨는 공단에 접수 처리 지연 이유를 재차 물었지만 ‘본부에서 지침이 안 내려와 훨씬 일찍 제출하신 분들도 아직 처리가 안 되고 있다’는 답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대법원에서 차별이라고 판결했는데 지금도 이성혼과 동성혼을 다르게 취급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단은 이에 대해 “반려라는 표기로 인해 오해할 수 있지만, 접수 건에 관해서는 확인 후 별도 연락한다는 내용”이라며 “반려 사실은 없다”고 밝혔다. 행정적으로는 반려를 했지만 반려가 아니라는 것이다.

박한희 변호사(희망을만드는법)는 민원 처리 시한이 임박하자 ‘반려’로 처리를 해놓고도 실제로는 결정을 미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원명을 달리 기재해 접수한 것에 대해서는 “일단 민원을 접수하면 ‘반려’로 잡히지만 ‘질의’로 접수를 하면 ‘질의 회신’을 한 것이지 표면적으로는 거부가 되지 않는다”며 “형식적으로 반려로 안 보이게 하기 위해 행정 시스템을 이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이미 대법원에서 이성 부부의 사실혼과 다르게 처리하지 말라는 지침을 준 것으로, 법원 판결을 분석해서 어떻게 할지 세부적으로 지침을 마련할 게 아니라 똑같이 적용하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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