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시청 ‘알면서’ 문구 논쟁
성범죄 인식 드러낸 의원님들
일부 의원 “우연히 봐도 처벌해야 하나” 주장에 단서 추가
‘몰랐다’ 핑계 대면 처벌 못해…본회의 직전 삭제 후 통과
법조계·여성계 “가해자 법적 책임 축소하려는 시도” 비판
국회는 지난 26일 딥페이크 성착취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성폭력처벌법) 개정안, 이른바 ‘딥페이크 소지 처벌법’을 통과시켰다. 국회는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2(허위 영상물 등의 반포)에 ‘허위 영상물을 소지·구입·저장 또는 시청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2020년 도입된 딥페이크 처벌법에 소지 및 시청에 대한 규제 조항을 추가해 처벌을 강화한 것이다.
국회에서 이 법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이른바 ‘알면서’ 논쟁이 일었다. 상임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알면서라는 단서 조항이 법안에 새로 삽입됐다가 본회의 직전 다시 빠지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지난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는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이 의결됐다. 그런데 25일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알면서’라는 단어가 들어갔다.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일부 야당 의원들이 “시청한 자를 처벌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다운로드해서 우연히 본 것까지 다 처벌해야 되냐”며 허위 영상물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소지·시청한 경우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26일 상황은 또 달라졌다. 추미애 민주당 의원이 ‘알면서’가 삭제된 대안을 긴급 대표발의했고, 이 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3일간 ‘알면서’라는 단어가 법안에 들어갔다 빠지길 반복한 것이다.
법조계와 여성계 인사들은 이번 해프닝이 “가해자의 법적 책임을 축소하려는 불필요한 시도에서 생긴 일”이라고 비판한다. 성범죄 관련 법 조항에 ‘알면서’라는 단서를 달았을 때의 가장 큰 문제는 처벌의 사각지대가 생긴다는 점이다.
특히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의 경우 딥페이크 영상을 소지하기만 해도 처벌 대상인데, 대법원 판례는 외관상 명백히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되는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이미 ‘불법촬영물인 줄 몰랐다’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인 줄 몰랐다’는 주장은 관련 범죄 혐의자들이 애용하는 방어 전략이다. 한 변호사는 자신을 홍보하면서 딥페이크 영상에 나온 신체가 ‘아동의 것인 줄 몰랐다’는 점을 내세워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소지 ‘혐의 없음’ 판결을 받아낸 사례를 버젓이 소개하고 있다.
딥페이크 처벌법은 과실범이 아닌 고의범을 처벌하는 법이므로 ‘알면서’라는 단서 조항은 사실상 무의미하다. 형법 제14조에 따라 별도의 과실범 처벌 규정이 없는 한 고의로 범죄행위를 저질렀다는 점이 입증되지 않는다면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 딥페이크 성착취물 소지자 처벌은 원칙적으로 고의가 입증돼야만 적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알면서를 넣으면 고의범 처벌 조항에 또 한 번 ‘고의를 가진 사람만 처벌하겠다’고 강조하는 셈이 된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입법 과정에서) 과실과 고의에 대해 명확하게 선을 긋지 못하는 것 자체가 이 범죄의 원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라며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감수성이 있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구했는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