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초등의대반’ 방지법

오창민 논설위원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일제히 학원 수업과 과외를 딱 끊는 것이다. 이렇게만 되면 수많은 난제가 풀린다. 부모는 돈을 아끼고, 아이들은 공부 부담을 덜 수 있다. 입시가 공정해지고, 계층 이동 사다리도 복원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걱정하는 강남 집값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남들이 사교육을 그만둔다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사교육을 포기하지 못한다. 게임이론에 등장하는 ‘죄수의 딜레마’를 떠올리게 한다.

교육 주체들이 스스로 합리적 결정을 할 수 없을 땐 공권력을 동원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1980년 전두환 정권의 ‘과외 전면 금지’ 조치와 박근혜 정부에서 제정된 ‘선행학습금지법(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이다. 그러나 전자는 너무 강압적이어서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았고, 후자는 처벌 조항이 없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실제로 선행학습금지법은 물러 터졌다. 학교에서 선행교육을 금지했을 뿐 정작 사설학원은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학원의 선행학습 유발 광고와 선전을 금지했지만 처벌 규정은 없다. 사교육자들의 기본권과 학부모의 교육권 침해 등으로 위헌 시비가 일 것을 우려한 탓이다.

선행학습금지법을 업그레이드한 ‘초등의대반 방지법안’이 지난달 30일 발의됐다. 교육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 등이 주도했다. ‘초등메디컬반’ ‘초등M클래스’로도 불리는 초등의대반은 의대 정원이 확대되면서 올 초부터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초등학생에게 4~5년을 앞질러 미적분은 물론이고 가우스함수와 행렬식까지 가르친다. 심지어 ‘유아의대반’ ‘태교의대반’까지 나오고 있다. 초등의대반 방지법안은 이런 반교육적인 학원들에 1년 이하의 교습 정지를 명령하고 최고 3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조항을 담았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이 법안이 규제 수단의 적합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 등의 측면에서 정당하다는 의견을 냈다. 복잡다단한 문제가 법 하나로 해결될 리는 만무하지만 ‘선’을 넘은 사교육에 최소한의 견제 장치는 둬야 한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건물에 의대 입시 홍보문이 붙어있다. 문재원 기자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건물에 의대 입시 홍보문이 붙어있다. 문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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