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 폭락 속 벼멸구 창궐, 신음하는 농촌
“방제 예년엔 3번, 이번엔 7번 해도 못 막아”
전남·전북·경남 등서 여의도 117배 면적 피해
전남도 “이상기후로 대발생, 농업재해 인정을”
“2002년부터 벼농사를 해 왔는데 이렇게 심한 경우는 처음 봅니다. 수확을 포기한 농민도 여럿입니다.”
전남 해남군 화산면에서 30㏊의 벼농사를 짓는 김명훈씨(52)는 최근까지 벼멸구 방제만 7번이나 했다. 예년 같으면 3번 정도만 해도 벼멸구를 막을 수 있었다. 드론 방제 장비를 갖추고 있어 다른 농가보다 자주 방제했지만 김씨의 벼 10%도 피해를 봤다.
김씨는 “벼멸구는 어느정도 방제하면 잡힌다. 그런데 올해는 막을 수가 없었다”면서 “쌀값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방제 비용은 늘어나고 수확량도 감소해 다들 망연자실해 하고있다”고 말했다.
농민들과 지방자치단체가 한목소리로 창궐한 벼멸구로 인한 피해를 ‘재해’로 인정해 줄 것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올해 전남과 전북, 경남, 충남 등 벼농사가 많은 지역을 중심으로 서울 여의도면적(290㏊)의 117배에 달하는 논이 벼멸구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전남도는 3일 “정부에 폭염으로 확산한 벼멸구 피해를 농업재해로 인정해 줄 것을 건의했다”고 밝혔다. 전남도가 벼멸구 피해 재해 인정을 건의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전북도 등도 농업재해로 인정해 줄 것으로 요청하고 있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지난 2일 직접 ‘벼멸구 피해 재해 인정 및 특별재난지역 선포 촉구 건의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김 지사는 “도에서 행정력을 총동원하고 긴급 방제비 63억원을 투입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피해 확산을 막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올해 전국 농촌에서는 벼멸구가 창궐해 큰 피해가 발생했다. 지난달 기준 전국 벼멸구 피해 면적은 3만4000㏊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전남이 1만9603㏊로 가장 많고 전북 7187㏊, 경남 4190㏊, 충남 1656㏊ 등에서도 피해가 발생했다. 벼멸구는 벼 줄기에 구멍을 뚫고 즙을 빨아 먹어 고사시킨다.
특히 전남은 전체 벼 재배면적(14만7700㏊)의 13%가 벼멸구 피해를 봤다. 보성은 벼 재배면적의 26%(1988㏊), 고흥은 24%(2667㏊)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산지 쌀값은 지난해 10월 21만222원(80㎏ 기준)을 기록한 이후 11개월 연속 하락해 9월에는 17만4592원까지 폭락했다. 벼멸구 피해가 농업재해로 인정되면 농민들은 방제 비용과 생계비, 농업정책자금 이자 감면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전남도농업기술원은 벼멸구 대발생이 이상고온 때문으로 분석했다. 벼멸구는 최저기온이 20도 이하로 내려가면 활동과 번식이 감소한다. 올해 7~9월 전남 평균기온은 평년보다 2.6도 높은 27.2였다.
7월 말과 8월 초 바람을 타고 중국에서 유입된 벼멸구 산란 횟수는 높은 기온으로 2회에서 3회로 늘어났다. 또 7.9일 만에 알에서 부화해 기온이 20도 이하로 내려갔을 때보다 5일이나 빨라졌다.
김 지사는 “정부는 2014년과 2022년 벼 이삭도열병을 재해로 인정해 지원하기도 했다”면서 “일상화되는 이상기후로 농촌에서 기후재난이 현실이 됐다. 참혹한 농촌 현장의 고통이 덜어지도록 정부의 신속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