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플랫폼 기업의 주요 위법 행위를 조사해 제재하기까지 평균 3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에 법 위반 플랫폼의 시장 점유율은 급증했다. 최근 공정위는 주요 플랫폼 기업을 사전 규제하는 ‘사전지정제’를 포기하고 사후 규제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표했는데, 뒷북 제재가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7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받은 ‘플랫폼 기업 제재 현황’을 보면, 최근 10년간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처분을 받은 플랫폼 기업 사건(총 15건)의 평균 처리기간은 1092일(약 3년)이었다. 이는 조사 개시부터 제재까지 걸린 기간으로 위법 행위가 시작된 시점부터 보면 기간은 더 늘어난다. 기업별로는 구글(2건), 네이버(3건), 카카오와 카카오모빌리티 등 카카오 계열사(5건), 쿠팡(3건) 등 빅테크 기업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 외 딜리버리히어로와 지마켓이 각 1건이었다.
구글이 삼성전자 등 스마트폰 제조사와 맺은 ‘파편화 금지 계약’ 사건 처리에는 2001일(약 5.5년)이 걸렸다. 구글은 2011년부터 자사가 개발한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외에 다른 포크 OS를 스마트폰 기기에 탑재할 수 없도록 스마트폰 제조사와 계약을 맺었다. 포크 OS는 안드로이드의 소스코드를 변형해 만든 OS다. 구글은 제조사에 계약을 체결하지 않으면 플레이스토어 앱 마켓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압박했다. 공정위는 2016년 7월 조사를 시작해 2021년 12월 말 구글의 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에 과징금 2249억원을 부과했다.
2016년 국내통신 3사·네이버가 국내 앱마켓 ‘원스토어’를 출시하자 구글은 원스토어를 경쟁에서 배제하기 위해 원스토어에 게임을 출시하지 않는 등의 조건으로 모바일 게임사에 마케팅을 지원했다. 공정위는 2018년 조사에 착수했으나 2021년 구글의 행정소송으로 제재 절차가 한 차례 중단됐다가 2023년 7월에야 마무리됐다. 위법 행위가 이뤄진 시점부터 제재까지 약 7년이 걸린 셈이다.
이처럼 플랫폼 기업의 제재가 길어지는 것은 경쟁 제한성을 입증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플랫폼이 위법행위를 했다는 사실에 더해, 위법행위가 시장의 경쟁을 어느 정도로 저해했는지를 입증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1~2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빠르게 변하는 플랫폼 시장의 특성상 뒤늦게 제재가 이뤄진다 해도 굳어진 시장 독점 구조를 깨기 어렵다는 점이다. 구글의 금지 계약으로 삼성는 자사 스마트 시계에 포크 OS를 탑재하려다 포기했고, LG전자는 포크 OS를 탑재한 스마트 스피커 출시 계획을 백지화했다. 구글의 모바일 OS 시장 점유율은 2010년 38%에서 2019년 97.7%로 급증했다.
국내플랫폼의 경우도 비슷하다. 네이버가 알고리즘을 조작해 자사 오픈마켓인 스마트스토어 입점제품을 우선 노출한 혐의로 2021년 1월 공정위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신고부터 제재까지는 1180일(3.2년)이 걸렸다. 네이버의 오픈마켓 시장 점유율은 2015년 4.97%에서 2018년 21.08%로 급증했다. 카카오모빌리티가 자사 가맹택시인 ‘카카오T블루’에 콜을 몰아준 사건 제재에는 813일(2.2년)이 걸렸다. 카카오T블루의 시장점유율은 2019년 14.18%에서 2022년 79.06%로 치솟았다.
현행법으로는 적시 제재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자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지배적 플랫폼사업자를 사전에 지정해 감시하는 플랫폼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플랫폼 업계의 반발에 플랫폼법 추진을 무기한 연기했고, 지난 9월 기존 입장에서 한 발 후퇴해 사후 규제를 골자로 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김 의원은 “플랫폼 기업은 인근 시장으로 독점력을 전이하는 게 굉장히 빠르기 때문에 과징금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적시에 행위를 중단시키는 게 중요하다”면서 “공정위가 사전지정제를 철회하면서 독과점이 다른 시장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는 예방적 효과를 포기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