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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지를 기억하며

[송혁기의 책상물림]정인지를 기억하며

“늙은이에게 술은 아기의 젖과 같다오.” 노년에 밥은 잘 먹지 못하고 술만 마시는 까닭을 묻는 이에게 정인지가 답한 말이다. 막걸리는 빛깔이 젖과 비슷할 뿐 아니라 이가 빠져 씹기 어려운 노인도 술술 넘길 수 있으니 아직 이가 나지 않은 아기가 마시는 젖이나 다름없다며 너스레를 떤 것이다. 정인지는 병조정랑을 지내던 20대에도 금주령을 어겨 처벌받은 적이 있고, 노년에 조정 연회에서 만취하여 세조에게 말실수를 크게 하는 등 여러 번 물의를 빚을 정도로 애주가였다.

조선의 천재로 여럿이 꼽히지만, 전시와 중시에서 연거푸 장원에 오른 정인지도 그중 한 사람이다. 다섯 살에 글을 읽었고 눈만 스치면 다 암송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문장에 능했을 뿐 아니라 수학과 음악에도 탁월했고, 행정력 역시 매우 민첩하여 태종부터 성종까지 7대에 걸쳐 벼슬하며 영의정에까지 올랐다. <세종실록>을 찬술하며 이례적으로 ‘지리지’를 따로 만들어 붙임으로써 오늘날 독도 관련 최초의 기록물이 남아있게 한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선 중기 이후 정인지의 이름은 사라졌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수없이 그의 작품이 인용되어 있는데 정작 문집은 따로 전하지 않는다. 알려져 있다시피 세종의 유지를 어기고 세조를 도와 단종을 폐위한 행적 때문이다. 의리와 명분을 생명처럼 여기던 조선에서, 불과 몇 세대 만에 정인지에게는 치명적인 배신의 낙인이 찍힌 것이다.

오늘 정인지를 다시 떠올리는 이유는 훈민정음에 붙인 그의 서문이 새삼 뜻깊게 다가와서다. 문자는 각자 편하게 사용하는 게 중요하지 굳이 중국과 똑같게 할 필요는 없다는 언명으로 시작해서, 28자만으로 활용이 무궁하여 열흘이면 누구나 터득할 만큼 배우기 쉽다는 점, 쓰고 싶은 말을 표현하지 못할 것이 없고 세상의 어떤 소리도 다 표기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강조하고, 우리나라 역사가 이어온 것이 바로 훈민정음이 창제된 오늘을 기다려온 것이라는 감격으로 마무리하기까지, 정인지의 붓끝은 훈민정음의 의의와 가치를 더할 나위 없이 명료하게 정리했다. 적어도 한글날만큼은 이 잊혀진 천재의 서문을 찬찬히 다시 읽어볼 일이다. 한글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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