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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대역에서 혼자 한글날을 기념하다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교대역에서 혼자 한글날을 기념하다

지하철 3호선 교대역은 한때 약속장소로 뻔질나게 이용했던 곳이다. 인정 없는 사각형들의 단조로운 지형지물들이라 추억이 고일 장소는 아니다. 어릴 적 시골과 비슷했더라면 모처럼 이곳에서 퇴적된 흔적을 찾느라 약속 시간에 짐짓 늦을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도시란 그런 곳이 아니다. 뱀을 보고 놀랄 일도, 송아지한테 장난칠 일도 없다. 지하도가 길게 똬리를 튼 교대역은 증명사진보다 엄청나게 큰 법률가들의 광고판이 제 세상인 듯 활개 치는 곳일 뿐.

생활의 근거를 옮긴 뒤 물길 끊긴 우각호 같은 교대역이다. 그런데 지난주 합천 황매산 꽃산행 마치고 귀경하여 남부터미널을 지나 환승하느라 실로 오랜만에 잠시 체류하게 되었다. 무척 붐비는 교대역에서 옛날 동작을 되살려 물살 가르는 쉬리처럼 지름길로 잽싸게 움직이려다가 그만 마음을 탁 놓아버렸다. 사흘 후면 한글날, 그걸 알았으니 교대역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의 입술, 함부로 볼 장소가 아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는 물론 방대한 국어사전이 들어 있는 곳이 입술 아닌가. 사랑도 혁명도 불가능도 내일도 저 입술에 다 들어 있다. 그런 입술로 하는 슬기로운 동작 중의 하나는 외우는 것이다. 지나가는 일 물끄러미 쳐다본다 해도 손가락에 반지 끼듯 저절로 외워지는 것도 많다. 고향집 주소, 교훈과 교가, 너의 이름과 얼굴을 어찌 외우지 않고 배기랴.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번…” 이건 시인들도 외운다는 소월의 절창이고, 그리고 많은 이들이 외우는 게 또 하나 있다. 나도 고등학생 때 외운 이래 아무 때고 그냥 입술에서 꺼내 놓는 것. 교대역 3호선 고속버스터미널 방향의 벽면에 장식된 그것은 우리 겨레의 아주 거룩한 문장이다. 지금은 스크린도어에 가려 기를 쓰고 보아야 겨우 쪼금 보이는 것. 모처럼 입술을 딸막거려 혼자 속으로 우렁차게 외운 ‘훈민정음 서문’.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씨 이런 젼차로 어린 백셩이 니르고져 홀배이셔도 마참내 제뜨들 시러펴디 몯할 노미 하니라 내 이랄 윙하야 어엿비 너겨 새로 스믈여듧 짜랄 맹가노니 사람마다 해여 수비니겨 날로 쑤메 뼌한킈하고져 할따라미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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