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문재학 열사가 실제 주인공
한강 “압도적 고통, 소설 쓰며 매일 울었다”
“사람들이 다 알아야지 우리만 알면 쓴대요. 이제는 세계가 다 5·18을 알겠지요.”
김길자씨(85)는 11일 소설가 한강(54)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마음이 울컥하고 눈물이 났다”고 했다. 김씨는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실제 주인공인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문재학은 항쟁의 중심지였던 옛 전남도청에서 5월27일 새벽 계엄군의 진압작전으로 사망했다. 그는 5·18 당시 전남도청에서 사상자들을 돌보고 유족들을 안내했다.
2021년 문화체육관광부 전남도청복원추진단이 공개한 사진에는 1980년 5월27일 오전 7시50분쯤 옛 전남도청 경찰국 2층 복도에 흥건히 피를 흘리며 쓰러진 교련복을 입은 소년 두 명이 있었다. 같은 고등학교 친구였던 문재학과 안종필이었다.
소설가 한강은 2014년 문재학의 이야기를 <소년이 온다>라는 소설로 그려냈다. 소설 속 주인공 동호가 문재학 열사다.
한강은 이 소설을 쓸 당시에 대해 KBS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은 ‘고통’이었던 것 같아요. 압도적인 고통. 이 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거의 매일 울었어요”라고 말했다.
노벨위원회는 <소년이 온다>에 대해 “1980년 한국군이 자행한 학살 사건에서 살해된 인물, 역사의 희생자들에게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이 책은 이 사건을 잔혹한 현실화로 직면함으로써 증인문학의 장르에 접근한다”고 평가했다.
한강은 소설을 쓰기 전 김씨를 직접 찾아가 문재학 열사의 사연을 들었다. 김씨는“한강이 찾아와 끝까지 (문재학의)이야기를 듣고 갔다”고 기억했다.
“시상에, 시체가 저렇게 많은데 무섭지도 않냐 겁도 많은 자석이.”
“군인들이 무섭지, 죽은 사람들이 뭐가 무섭다고요.”
<소년이 온다>에서 주인공과 어머니가 나눈 대화도 김씨의 증언이 모티브가 됐다.
김씨는 “당시에는 ‘소설가가 왜 재학이 이야기를 물어 본다냐’ 라고만 생각했다”면서 “소설이 발표된 이후 너무 고마웠다. 재학이 뿐만이 아니라 5·18을 다뤄준 것에 대해 한강 작가에게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5·18이후 아들의 죽음을 알리기 평생을 살아온 김씨는“어제 저녁에 노벨상을 받는다고 해서 너무 기뻤다”며 노벨상 수상으로 5·18민주화운동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소년이 온다>는 영미권에서 <휴먼 액트(Human Acts)>로 번역돼 20여 개 나라에서 출간되기도 했다.
김씨는 “나는 재학이를 잊지 않으려고, 세상이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 살아왔다”면서 “평생 내가 못해낸 일을 소설가 한 분이 좋은 글로 세계에 알렸다. 이제는 많은 사람이 5·18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5·18기념재단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했다. 5·18재단은 “한강 작가의 수상은 1980년 5·18이 광주를 넘고 전국을 넘어 과거 국가폭력의 역사를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대단히 기쁜 일”이라고 밝혔다.
재단은 “한강 작가의 수상으로 5·18의 진상이 국내외로 더욱 널리 알려지기를 고대한다”면서 “재단에서도 한강 작가, 관계자와 협의해 5·18의 정신을 확산시킬 수 있는 활동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광주·전남 지역사회에서도 환영의 목소리가 잇따랐다. 한강은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페이스북에 “노벨문학상을 한강 작가가 수상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아 대단하다. 가슴이 뜨겁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영록 전남지사도 페이스북에 “2000년 김대중 대통령님의 노벨평화상에 이은 우리 고장 출신의 두 번째 쾌거”라며 “우리 고장 출신으로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여주신 한강 작가님께 깊은 존경과 경의를 표한다”고 썼다.
김 지사는 “이번 수상은 한국문학의 깊이와 수준이 세계적 수준임을 확인시켜준 역사적 쾌거”라며 “전남도는 앞으로 우리의 감성을 바탕으로 한 지역 작가들의 창작활동을 힘껏 뒷받침하면서 K-문학을 선도하는 데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