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객지살이가 원망스러울 된장잠자리

엄민용 <당신은 우리말을 모른다> 저자

가을 하면 바로 연상되는 곤충이 있다. ‘잠자리’다. 이맘때 도심을 벗어나면 파란 하늘 아래 무리지어 날아다니는 잠자리들과 들판의 가을꽃 위에 내려앉은 잠자리를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잠자리는 ‘가을 곤충’이 아니다. 잠자리는 초여름부터 우리 곁을 날아다닌다. 다만 가을이면 잠자리가 유난히 많이 보인다. 이는 태풍과 관련이 있다. 태풍이 한반도로 향할 때 많은 곤충이 바람에 휩쓸려 ‘이주를 당한다’는 사실이 현대 과학에 의해 밝혀졌다. ‘된장잠자리’도 그중 하나다. 이름에 ‘된장’이 붙어 있고, 주변에서 아주 흔히 볼 수 있어 우리나라 토종처럼 생각되지만, 된장잠자리의 본래 서식지는 동남아시아다. 그런 까닭에 된장잠자리는 우리나라에서 번식을 못한다. 추운 겨울 탓이다. 한가하고 자유로운 모습과 달리 된장잠자리로서는 원망스럽고 서글픈 객지살이를 하는 셈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잠자리는 ‘고추잠자리’다. 수컷의 몸빛이 고추처럼 새빨갛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반면 암컷은 몸빛이 노르스름하다. 이 때문에 ‘메밀잠자리’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다.

잠자리의 옛 표기는 ‘잔자리’다. 그 어원에 대해서는 “날개의 모양이 ‘잠을 자는 자리’처럼 생겼다는 의미에서 지어졌다”는 설, “‘자리’는 날개와 관련된 말이고, 그 앞에 ‘파르르 흔들리다’를 뜻하는 ‘잔’이 붙은 것”이라는 설 등 여러 의견이 있다.

일상생활에서 “철없이 함부로 덤벙거리거나 날뛰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천둥벌거숭이’도 잠자리와 관련이 있다. 여기서 벌거숭이는 “옷을 죄다 벗은 알몸뚱이”로, ‘벌거벗다’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런데 벌거숭이는 우리 속담에서 잠자리를 가리키기도 한다. 일부 국어사전에 벌거숭이가 ‘잠자리의 비표준어’로 올라 있기도 하다. 다만 이때의 벌거숭이는 ‘벌겋다’에 뿌리를 둔 말이다.

한편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풀잠자리’와 ‘뱀잠자리’는 이름에 ‘잠자리’가 붙어 있지만, 생물학적으로는 잠자리와 전혀 다른 종으로 분류되는 곤충이다.

<엄민용 <당신은 우리말을 모른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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