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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율 살아 있는 문장, 반복 통한 이미지…‘경험하는 듯한’ 글

한림원 선정 이유에 나온 ‘시적 산문’이란 무엇인가

서울에서, 고향 광주에서…곳곳에 한강 열풍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의 책 일시품절 안내문이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놓여 있다(위쪽 사진). 14일 오전 광주 북구 중흥도서관에서 아이들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의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에서, 고향 광주에서…곳곳에 한강 열풍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의 책 일시품절 안내문이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놓여 있다(위쪽 사진). 14일 오전 광주 북구 중흥도서관에서 아이들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의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한강의 문학적 출발은 ‘시’
형식·표현서 시 특징 뚜렷
환상적 상상력도 시적 산물
“독자는 감각 체화하게 돼”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의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를 이같이 밝혔다. 한 작가 작품의 고유한 성격으로 꼽히는 ‘시적 산문’은 무엇일까. 문학평론가들에 따르면 그의 ‘시적 산문’은 형식에서 드러나기도 하고, 주제의식을 형상화하거나 독자들이 소설을 ‘경험하는 방식’으로도 나타난다.

“이제 당신에게 내가 흰 것을 줄게/ 더렵혀지더라도 흰 것을,/ 오직 흰 것들을 건넬게.//더 이상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게.//이 삶을 당신에게 건네어도 괜찮을지.”(소설 <흰> 중)

한 작가는 시인으로 문학적 출발을 했다. 1993년 시로 등단했고 2013년에는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를 펴냈다. 그러나 시뿐 아니라 소설에서도 시적 운율을 지닌 문장들이 나온다.

특히 2018년 펴낸 소설 <흰>은 ‘흰’ 것들에 대한 65개의 이야기가 담겼다. 65편의 시가 담긴 한 권의 시집으로 읽어도 손색이 없다.

이광호 문학평론가는 “한 작가에게 시와 소설의 구분은 사실 경계가 없다. 엄격한 장르적 구분을 넘어서는 새로운 글쓰기다”라고 말했다.

오은교 문학평론가는 “한 작가의 소설은 산문인데도 강약, 장단, 고저 등의 음성적 특징이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눈의 벽에 촛불이 감싸이자 사위가 더 어두워졌다. 내 눈앞에 떨어지고 있는 눈송이들이 거의 잿빛으로 보였다. 빛나는 것은 인선이 누운 곳으로 내리는 눈송이들뿐이었다.”(<작별하지 않는다> 중)

시의 장르적 특성인 ‘이미지’를 활용하는 방식에서도 ‘시적 산문’ 특성이 두드러진다.

오은교 문학평론가는 “한 작가는 시뿐만 아니라 소설을 쓸 때에도 압운이나 반복을 통해 이미지를 형상화한다. 켜켜이 쌓이는 눈의 모습, 지속적으로 손가락을 찌르는 듯한 통증, 되풀이되는 꿈같은 것들이 그렇다”고 말했다.

강지희 문학평론가는 경향신문에 기고한 한강론, ‘흰 뼈의 미학’에서 <작별하지 않는다>에 나오는 “기이하게 녹지 않는 눈 한 송이”를 “여리지만 끝내 훼손될 수 없는 인간의 안의 마지막 존엄성”으로 분석한다.

강 평론가는 “한 작가가 이미지를 활용하는 방식이나 그 이미지를 통해서 급격한 도약을 이루는 순간들을 ‘시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며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이 세계를 탈출하는 방식이 ‘눈송이’의 이미지를 경유해서 그려진다. ‘시적 산문’의 대표적 사례다”라고 말했다.

“이상하게도 나는 혼자였어. 그러니까 혼들은 만날 수 없는 거였어. 지척에서 혼들이 아무리 많아도, 우린 서로를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어. 저세상에서 만나자는 말 따윈 의미없는 거였어.”(<소년이 온다> 중)

기존 소설의 문법과 다른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시적 상상력’ 또한 한 작가의 ‘시적 산문’의 특성이다.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문학평론가)는 “<소년이 온다>에서는 시점에 계속 바뀌고 죽은 자가 말을 한다. <채식주의자>에서는 주인공이 나무가 된다. 전통적 리얼리즘 소설에서는 말도 안 되는 부분이다”라며 “또 <작별하지 않는다>에 나오는 나무나 눈에 대한 묘사와 주인공이 환상을 떠올리는 상황은 현실과 환상의 구분을 모호하게 한다”고 말했다.

한 작가의 ‘시적 산문’의 특성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소설을 “경험하게 하는” 독특한 효과를 낳는다. 독자들이 그의 작품을 읽기 힘들다고 말하는 데서 알 수 있듯 단순한 공감을 넘어서 고통을 경험하는 듯한 윤리적인 감각을 준다.

양윤의 문학평론가는 “‘시적 산문’으로서 한강의 언어는 우리를 경험하게 하고 공유할 수 있는 공통감각으로 끌고 가 윤리적인 감각을 체험하게 한다”며 “독자는 그 감각에 거리를 두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각인된다고 느끼면서 어떤 윤리 의식, 윤리적인 감각을 체화하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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