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서울문화유산연구소, “공사 성공 기원하며 항아리·동물 묻어”
토목기술 보여주는 나무기둥, 판축구조물 등도 확인···17~18일 현장설명회

서울 풍납토성(사적) 서쪽 성벽 복원지구 발굴조사에서 성벽을 쌓기 시작할 당시에 치러진 의례행위 흔적들이 처음 확인됐다. 사진은 성공적인 공사를 기원하며 ‘지진구’로 묻은 토기 항아리의 출토 장면. 국립서울문화유산연구소 제공
백제 초기인 한성백제 시대(기원전 18~기원후 475년)의 왕성으로 유력한 서울 풍납토성에서 성벽을 쌓을 당시 성공적인 공사를 기원하며 치른 의례행위 흔적, 유물이 처음으로 발굴됐다.
또 성벽을 견고하고 만들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2.5m 이상의 긴 나무 기둥 등 성벽 축조기법들도 새롭게 확인됐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서울문화유산연구소는 “서울 풍납토성 서쪽 성벽(서성벽) 복원지구 발굴조사에서 성공적인 축성을 기원하기 위한 의례행위의 흔적, 초기 백제인들의 축성 기법 등을 확인했다”며 “17~18일 발굴현장에서 조사성과를 공개하는 현장설명회를 연다”고 15일 밝혔다.

서울 풍납토성 발굴조사에서 성을 쌓는 공사의 성공을 기원하며 공헌물로 묻은 개, 송아지의 뼈들이 확인됐다. 국립서울문화유산연구소 제공
발굴조사 결과, 성벽 축성 등 왕성의 기초를 마련하면서 치른 의례행위 흔적은 다양하다. 우선 서성벽을 쌓아 올리기 위한 토대인 기반층에서 의례 행사에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지진구(地鎭具) 3점이 드러났다.
지진구는 건축물 등을 짓기 전에 별 탈없는 성공적인 공사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공사 현장의 땅속에 묻는 여러 상징물을 말한다. 고대 사회에서 지진구는 다양하지만 주로 크고 작은 토기 등을 묻었고, 삼국시대 주요 발굴현장에서 확인된다. 이번 풍납토성 발굴조사에서도 지진구는 토기 항아리들이다.
또 풍납토성 서쪽 문이 있던 터(서문지)에서는 의례 행사의 제물이나 공헌물로 활용된 것으로 보이는 개, 송아지 뼈들이 나왔다. 발굴조사 과정에서 서문지는 처음 지어진 후 이후 특정 시기에 보수되고 다시 지어진 흔적도 확인됐다.

서울 풍납토성 서성벽에서 확인된 긴 나무 기둥(왼쪽)과 성벽의 견고함을 높이기 위한 판축기법과 판축구조물 모습. 국립서울문화유산연구소 제공
국립서울문화유산연구소는 “백제인들이 한강변의 자연제방을 이용해 왕성의 기초를 닦을 당시에 여러 의례행위를 했던 양상이 처음 확인됐다”며 “이런 의례 행위는 왕성이라는 대규모 공사의 시작을 알리고, 왕성 공사의 성공을 염원하는 뜻에서 이뤄진 것으로 해석된다”고 밝혔다.
성벽 내부에서는 길이 2.5m가 넘는 나무 기둥들이 발견됐다. 나무 기둥들은 흙과의 마찰력을 높이기 위해 일부 가공한 흔적들도 남아 있다. 국립서울문화유산연구소는 “나무 기둥들은 현대 건축물의 뼈대이자 구조적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H빔’과 같은 역할을 했을 것으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풍납토성 성벽을 쌓아 올린 축성 기법들도 더 세부적으로 확인됐다. 풍납토성은 그동안의 발굴조사에서 ‘판축기법’이라는 독특한 축성 기법이 드러나 큰 주목을 받아왔다.
판축기법은 물성이 다른 흙을 켜켜이 다져 쌓음으로써 성벽을 보다 견고하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백제인들은 풍납토성 성벽을 쌓으면서 먼저 견고하고 큰 흙덩어리라 할 판괴를 만들었다. 판괴는 판축구조물이라 부르는 사각형의 틀을 짠 후 그 틀 안에 일정한 두께로 물성이 다른 흙을 교대로 쌓아 올린 것을 말한다. 수많은 판괴를 서로 앞뒤, 좌우로 계속 붙여 나가면서 성벽을 쌓은 게 판축기법이다.
서울문화유산연구소는 “지난 2017년부터 풍납토성 서성벽 복원지구 발굴조사를 통해 백제인의 왕성 축조를 위한 기획과 축조 과정, 토목기술 등을 확인해왔다”며 “백제인들은 왕성 입지가 가지는 여러 자연적 어려움을 판축기법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지혜롭게 극복하고 둘레 3.8㎞ 이상의 토성, 왕성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그동안의 발굴조사에서는 백제인들이 한강변의 자연제방을 활용했고, 자갈층 등을 활용해 한강변 배후습지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성벽 축조의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성벽 축조 이전 시기부터 이용해왔던 통행로를 왕성의 성문과 연결해 내부 도로로도 활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서울 풍납토성의 서성벽 복원지구 전경. 국립서울문화유산연구소 제공
서울문화유산연구소는 “발굴조사 성과와 출토 유물을 통해 백제인의 토목기술을 확인할 수 있는 2회의 현장설명회는 사전 신청을 통해 선착순으로 참여할 수 있다”며 “서울문화유산연구소 누리집(https://www.nrich.go.kr/seoul/index.do)에서 신청하고, 선정결과는 16일 오후 5시 이후 누리집에서 확인 가능하다”고 밝혔다.
사적으로 지정돼 있는 서울 풍납토성은 백제가 고구려에 밀려 공주(웅진)로 도읍을 옮긴 475년까지 왕성이었던 ‘하남위례성’으로 유력한 유적지다. 현재는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살아가는 도심이어서 발굴조사는 부분적으로만 수십년 째 이뤄지고 있다. 풍납토성에서는 그동안 백제 초기시대의 다양한 종류 유물은 물론 대형 건물지, 집터, 도로, 우물 등이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