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힘입어 도서 업계에 ‘한강 특수’가 이어지고 있지만 추가 제작 물량은 대형서점 위주로 공급되고 있다. 유통망에서 소외된 동네서점, 독립서점은 손님이 한강 작가의 책을 찾아도 판매할 책이 없어 한강 특수가 ‘그림의 떡’인 셈이다.
광주에서 8년째 독립서점 ‘소년의서’를 운영하는 임인자씨(48)는 15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책이 언제 올지 잘 모르겠다”며 “이번 주도 아마 못 올 것 같고 대형서점에서 어느 정도 소진이 되면 동네서점에 풀릴 가능성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뒤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오픈런’(매장 문이 열리자마자 물건을 구매하려 달리는 일)까지 벌어졌지만 그 관심과 애정을 제대로 받아안지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서울 마포구에서 독립서점 ‘개똥이네책놀이터’를 운영하는 정영화씨(57)도 “온라인 플랫폼이나 대형 서점이 풀리고 나서야 올 것 같다”며 “이번 주엔 물량이 풀릴 줄 알았는데, 다음 주나 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지난 10일부터 14일까지 한강 작가의 책은 예스24·교보문고·알라딘 등에서만 전국적으로 85만부가량 팔렸다. 업계 관계자는 “그마저도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동네·독립서점에서도 ‘반짝 특수’ 기미가 있었다. 동네서점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온라인 사이트 ‘동네서점’의 박창우 대표는 “10일 수상 소식이 전해진 뒤 사이트 트래픽이 4배 가까이 뛰었다”며 “한강 작가의 서점(책방오늘)을 검색하려는 사람도 있지만 책을 사려고 들어온 사람이 유입된 것”이라고 말했다.
동네·독립서점이 느끼는 소외감에는 이유가 있다. 도서 도매상은 물량을 가장 많이 보낼 수 있는 대규모 판매자에게 먼저 책을 보내고 남은 책을 동네·독립서점에 댄다. 온라인 서점이나 대형서점에서 소화하고 남는 물량이 넘어가기 때문에, 특수의 온기가 동네·독립서점에 닿으려면 시간이 걸린다. 지금처럼 시민들의 관심이 높을 때 앞줄에 있는 대형 판매자가 책을 쓸어가면 뒷줄에 있는 판매자는 받을 수 있는 물량이 거의 없다. 교보문고는 한 작가의 수상 소식 뒤 동네서점의 발주 주문을 막았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다른 영업점도 물량이 없어 도서를 비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일부러 발주를 중단한 것이 아니라 주문된 도서 물량이 너무 밀려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동네서점 주인들은 “어쩔 수 없다”면서도 불만을 털어놨다. 정씨는 “작은 서점 수백개를 합쳐도 온라인 서점 매출에 미치지 못하니까 도매상에게 ‘책을 빨리 달라’고 해도 ‘물량 배분 문제가 있어서 어쩔 수 없다’고 한다”며 “하루 이틀 겪는 문제는 아니지만 서운하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 ‘다시서점’ 김경현 대표(38)는 “강서구 서점 주인끼리 주말에 한 번씩 만나는데 이번엔 아예 주문을 포기한 분도 있었다”고 했다. 그 역시 한강 작가의 <소년이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를 총 30권 주문했지만 도매상이 일부 물량을 취소해 14권만 받았다.
동네·독립서점의 생존을 위해 대형서점 중심으로 짜여진 유통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씨는 “대형서점에서 더 많이 팔릴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라며 “한강 특수를 넘어 또 다른 경사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주변의 동네서점을 많이 찾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알고 지내던 책방이 폐점한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한 작가도 독립서점을 운영 중이다. ‘책방오늘’은 2018년 양재동에서 문을 열었고 지난해 종로구 서촌으로 이동했다. 한 작가는 2022년 언론 인터뷰에서 “만성적으로 큰 폭의 적자를 내고 있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이 비이성적인 활동을 계속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라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