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SML 직원들이 EUV 장비를 손보고 있다. ASML 제공
반도체 시장에 ‘ASML 쇼크(충격)’가 닥쳤다.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사인 네덜란드 ASML이 “인공지능(AI)을 제외하고는 다른 반도체 분야는 더디게 회복되고 있다”는 어두운 전망을 내놓으면서다. ASML의 매출 감소는 반도체 업계의 투자 감소를 의미하기 때문에 최근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반도체 겨울론’에 무게가 실린다는 전망이 나온다.
ASML은 15일(현지시간) 올해 3분기 매출 74억6700만유로(약 11조원), 순이익은 20억7700만유로(약 3조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매출은 직전 분기인 62억4300만유로보다 19.6% 늘었으며 지난해 3분기(66억7300만유로)보다는 11.9% 증가했다. 순이익은 직전 분기(15억7800만유로)보다 31.6% 증가했으며 지난해 3분기(18억9300만유로) 대비 9.7% 늘었다. ASML은 당초 오는 16일 3분기 실적을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기술적 오류로 하루 일찍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이 회사의 수주 실적과 향후 전망은 어둡다. ASML의 3분기 예약 매출(26억유로)은 시장조사업체 LSEG가 집계한 시장 전망치(56억유로)를 크게 밑돌았다. 이 회사는 내년 매출이 300억~350억유로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는 시장 전망치(358억유로)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크리스토퍼 푸케 ASML 최고경영자(CEO)는 “AI 분야에서 강력한 개발과 상승 잠재력이 계속되고 있지만, 다른 시장 영역은 회복하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며 “지금은 회복이 이전에 예상했던 것보다 더 점진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는 내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로 인해 고객이 조심스러워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푸케 CEO는 “메모리 분야에서 설비용량 확대는 제한적이며, 기술 전환은 고대역폭메모리(HBM)와 DDR5 등 AI 관련 수요에만 집중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시장의 최근 양극화 양상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AI 작업에 사용되는 고성능·프리미엄 제품에 대한 수요는 강한 반면, PC·스마트폰 등 일반적인 범용 제품의 수요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이 같은 시장 환경은 D램 등 범용 메모리 제품에서 대부분의 매출을 올리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실적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지난달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도 “반도체 시장에 겨울이 오고 있다”며 내년부터 D램 업황이 꺾일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아울러 푸케 CEO는 “파운드리 업계의 경쟁 때문에 고객들의 새로운 공정 확대가 느려지고 있으며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수요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난항으로 미국 텍사스주 공장 가동을 연기했으며 인텔 또한 독일 공장 건설을 중단한 바 있다.
ASML은 첨단 반도체 제조 공정에 반드시 필요한 EUV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기업이다. 이는 반도체 원재료인 웨이퍼에 빛을 쏴 미세한 회로 패턴을 그리는 데 사용되는 장비로 ASML이 공급을 독점하고 있다.
- 경제 많이 본 기사
중국 수출길이 막힌 점도 이 회사의 전망을 어둡게 했다. 미국 정부의 대중 반도체장비 수출 규제와 이에 부응한 네덜란드의 수출 제한 조처로 상황이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ASML의 대중 수출은 총 매출의 절반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이번 실적 소식에 이날 ASML 주가는 16.26% 폭락했다. 1998년 6월12일 이후 최대 하락폭이다. 엔비디아·AMD·TSMC 등 반도체 관련 주식들도 일제히 하락했으며 국내 증시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도 2% 넘게 하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