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蠱毒)이라는 저주

장지연 대전대 역사문화학 전공 교수

외롭다는 뜻의 ‘고독’이 아니다. 배 속 벌레 고 자와 독약이라고 할 때의 독 자를 합쳐 ‘고독’이라고 불리는 저주다. 글자 생김으로 뜻을 따져보면 고(蠱) 자는 그릇(皿)에 담긴 벌레를 의미하니, 고독은 이를 이용한 저주를 뜻한다.

저주의 방법은 이러하다. 항아리 안에 여러 종류의 독충이나 파충류를 한데 모아 봉한 다음 그 안에서 서로를 잡아먹게 한다. 다음 해에 개봉을 했을 때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한 마리를 태워 가루로 만든다. 이 가루를 저주하고 싶은 사람의 음식이나 술에 넣으면, 그 사람이 시름시름 앓다 죽는다. 혹은 이 항아리에서 혼자 살아남은 생물을 ‘고’라 하는데, 신을 섬기듯이 모시고 제사를 지내면 음식에 독을 방출한다고도 한다. 고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동물은 매우 다양했다. 뱀을 써서 만들면 사고, 고양이를 쓰면 묘고, 개를 쓰면 견고라고 했다. 중국 고대부터 전해진 이 고독은 조선시대에는 사면령 대상에도 들지 못할 정도로 잔혹한 저주로 여겨졌다.

고독은 어떻게 저주가 될까? 여기에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어떤 감각에 기반한 논리가 자리한다. 살아남겠다고 발버둥 치며 다른 생물을 모두 죽이려면 정말 큰 원념이 응축될 것이다. 여기에 기껏 그 고생을 하며 살아남았는데 결국 죽임을 당하는 것에 대한 분노도 폭발할 것이다. 이렇게 죽은 생물의 원한과 분노, 살아남은 생물의 폭력성과 집념이라면 다른 생물을 죽일 정도의 능력을 충분히 갖게 되지 않을까? 바로 이런 감각 말이다.

이러한 주술에 대한 논문과 기록을 심드렁히 보다가 문득 소름이 돋았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바로 이 고독을 만드는 항아리와 다를 바가 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무한 경쟁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 안에서 살아남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압박하지 않는가. 어느새 그 압박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경쟁을 찬양하고 승리와 생존만이 최상의 가치라고 칭송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가치관을 내면화하고서, 나만 살아남으면 된다며 그 어떤 불법도, 부도덕한 행위도 저지르는 데 거리낌이 없고, 약자를 돌보는 것은 위선이라고 비난하며, 타인을 눌러 이길 수 있는 더 큰 힘만을 갈망하고 있지 않은가.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세계관이 팽배한 세상, 이것이 고독을 만들기 위한 그 항아리와 다를 것이 무엇일까.

고독의 항아리 속에는 체념과 울화, 원한과 분노만 가득하다. 도태된 자는 물론이고 살아남은 자도 정상일 수가 없다. 자신은 당당히 살아남았음을 자랑스러워하며 대단한 성취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승자독식이 올바른 윤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타인에 대한 경멸과 혐오, 나의 생존에 대한 집념과 악만 품은 이들이 어떻게 정상일 수 있을까. 기껏해야 누군가의 항아리 속에서 그저 강렬한 저주의 능력을 품은 ‘인고(人蠱)’가 되어버린 것일 터인데. 고독은 사람을 죽게도, 낫게도 하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믿어졌다. 그러나 그래봐야 저주일 뿐이다. ‘인고’가 된 것은 하등 자랑할 것이 못 된다.

다행히도 사람은 이런 고독의 항아리에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인간이란 지독히도 다양하기에 남들이 다 이 길이라고 해도 꼭 다른 길로 가는 사람들이 있다. 인류의 신화는 모두 보지 말라는 것을 보고, 열지 말라는 것을 여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하지 않던가. 이 세계가 전체가 아니고 하나의 항아리에 불과하다며 끊임없이 항아리의 바깥을 사유하는 사람들도 있다. 보통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무엇보다 우리 모두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고’가 된 자들이 아니라 그 와중에 희생당한 안타까운 피해자와 숭고한 이타성을 보여준 이들을 기릴 수 있는 서사력과 기억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의 공감력이 이런 이들을 향할 때, 그 항아리는 더 이상 고독의 항아리가 아닐 것이다.

장지연 대전대 역사문화학 전공 교수

장지연 대전대 역사문화학 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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