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식민지배가 끝나기 무섭게 38선으로 분단된 뒤 남북은 각자의 근대 국민국가를 세웠다. 같은 정체성을 가진 ‘국민’이 될 기회도, 유일한 통치기구가 일정한 영토를 통제하며 물질적 복리를 제공하는 단일 ‘국가’의 경험도 남북 주민들은 갖지 못했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언어와 출판문화를 공유함으로써 국민의 집단 정체성이 형성된다고 봤지만, 분단 이후 남북 주민들은 같은 신문·잡지와 방송을 접할 수 없었다. 같은 한글을 쓰되, 그에 담긴 사상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한국전쟁 3년간 경남 일부와 제주도를 제외한 전역에서 전쟁으로 가족, 이웃, 친척을 잃지 않은 한국인은 없다시피 했다. 북한은 더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 남북의 적대성은 극단화됐고, 한쪽이 완전히 파괴되지 않으면 통일이 불가능한 구조가 만들어졌다. 통일은 평화의 반대말이 됐다. 이 엄연한 사실을 모른 체하며 남북은 수시로 ‘통일론’을 띄웠다. 전후 한국보다 앞서 경제성장을 달성한 북한이 먼저 통일 공세를 펼쳤으나 1980년대를 거치며 한국이 역공에 나섰다. 통일 공세의 본질은 ‘힘자랑’이었다.
한국 보수들은 여전히 북한의 수령독재 체제를 무너뜨리고 흡수통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정은 체제가 붕괴되더라도 한국이 ‘대북 기득권’을 주장하기 어려운 국제 현실은 감안하지 않는 듯하다. 반면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로 남북관계가 규정된 이후 진보는 통일 언급을 자제하며 교류협력에 집중했으나, 남북관계 미래상을 치밀하게 고민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통일비용’을 줄이기 위해 경협을 추진한다면서도 ‘체제가 이토록 다른 남북이 유럽식 연합체라도 구성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속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통일 헌법을 만들고 총선으로 통일 정부를 구성한다’는 정부 공식 통일방안의 최종 단계는 정신이 아뜩해질 정도로 초현실적이다.
통일론의 비현실성을 의식한 역대 진보정부는 통일 대신 평화에 방점을 찍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평화가 먼저 정착돼야 한다”고, 문재인 대통령은 “통일보다 사이좋은 이웃이 되자”고 했다. 하지만 통일부는 이름이 바뀌지 않았고,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도 유지됐다. 공무원들이 ‘통일’ 단어만 입에 올려도 징계 대상이 되던 옛 서독처럼 철저한 태세 전환은 없었다.
한편으로, 1990년대 이후 북한은 한국에 어떤 정부가 들어서건 흡수통일 우려를 떨치지 못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해 12월 “우리 제도와 정권을 붕괴시키겠다는 괴뢰들의 흉악한 야망은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고 한 것에서도 엿보인다. 김정일 시대에는 경협 심화로 북한이 한국의 ‘내부 식민지’처럼 될 가능성도 걱정했을 것이다. 애써 만든 남북 합의가 휴지조각이 되는 한국 정치도 리스크였고, 서울을 거쳐 워싱턴에 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사라졌다.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관계” 선언은 한국과의 관계맺기가 ‘총론적으로 마이너스’라고 판단한 결과로 보인다.
북한이 ‘두 국가’를 선언하자 대북 적대시 정책을 전면화해온 윤석열 정부는 ‘자유통일이 완전한 광복’이라고 맞섰다. 그 통일이 평화의 반대말임은 윤 정부의 ‘브랜드 구호’인 ‘즉·강·끝’을 보면 안다.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로 안전핀이 빠진 한반도 상공을 오물 풍선과 무인기가 넘나들고, 서해 해상과 군사분계선은 일촉즉발의 ‘전선’이 됐다. 사람들은 동네에 떨어진 오물 풍선과 국군의날 도심 퍼레이드에서 전쟁의 기운을 감각한다.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꺼낸 ‘평화적 두 국가론’은 엄중한 현실을 반영한 고심의 제안이었다. 통일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북한의 국가성을 인정함으로써 적대성을 해소하자는 취지다. 이에 대해 ‘종북’ 운운하는 보수들은 논외로 치더라도, ‘국민정서를 외면하고 반헌법적 요소를 내포한다’는 민주당의 비판은 게으르다. 전쟁이 현실감을 띠는 절박한 상황에서, 논란이 몰고올 정치적 득실만 따지는 것은 공당답지 못하다.
시민사회도 ‘평화적 두 국가론’에 대해 적극 검토해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국가성을 인정하는 ‘남북 상호승인’ 방안(윤영상 카이스트 교수)을 포함해 남북 당국에 제안할 실천 의제도 고민해야 한다. 상호승인을 위한 대화는 당면한 군사적 긴장을 낮추면서 적대관계의 구조적 해소 가능성을 담고 있다. 국제 현안인 북핵 문제는 여전히 남겠지만, 지금은 남북 간 적대체제의 해소가 절체절명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