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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과 한국문학이라는 저수지

한강 작가가 올해 121번째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됐다. 한국 최초, 아시아 여성 최초, 역대 일곱 번째 젊은 작가 등 다양한 기록을 세웠다. 지난 일주일 사이 엄청난 반응이 이어졌다. 발표 몇 시간 만에 대부분 작품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더니 엿새 만에 100만권을 돌파했다. 그가 좋아했던 노래, 부친 한승원 작가의 책까지 판매가 급증하는 등 수상으로 인한 경제효과가 100억원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장흥, 광주, 종로구, 연세대 등 곳곳에 플래카드가 날리고 잔치가 벌어지고 문학관 건립, 석좌교수와 명예박사 제안까지 나왔다. 한국인에게 노벨 문학상은 과연 무엇일까.

상에 대한 염원은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문학잡지 ‘삼천리’는 1930년 1월호에서 작가들에게 “노벨상이 조선에 온다면 누가 받을까?”라고 질문했다. 염상섭은 “이불 속에서 활개 치기로, 주마고 하지 않는 노벨상의 예선은 쑥스러울 듯하여 그만둡니다만 우선 이학상을 타도록 힘쓰십시다”라고 피했다. 이무영은 직설적으로 “민촌(이기영), 현민(유진오), (박)화성, (이)효석, (김)동인, (염)상섭”을 꼽았다.

해방 이후에도 경제개발과 함께 문화창달에 대한 염원은 이어졌다. 전두환 군사정권은 서정주 시인에게 노벨 문학상 지원을 대가로 협조를 제안했다고 알려졌으며 2000년대 이후에는 체계적인 국가정책이 시행됐다. 한국문학번역원장을 지낸 윤지관 평론가는 “지금이라면 고은, 조금 늦다면 황석영”(2008)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그 무렵, 경기 안성의 고은 시인 자택에는 수상자가 발표되는 매년 10월 둘째 주 목요일마다 취재진이 종일 대기하다가 오후 8시 발표가 나면 철수하는 일이 반복됐다. 경향신문 문학 담당 기자였던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창문에 비친 그림자라도 찍으려는 기자들에게 시달리던 시인은 “10월 초가 되면 어디론가 숨고 싶다”고 했다. 2007년 영국 작가 도리스 레싱의 수상 소감은 대조적이었다. “상점에 다녀오는데 집 앞에 카메라와 사람들이 서 있어서 미니시리즈를 찍는 줄 알았다”고 ‘쿨’하게 말했다. 한강 작가 역시 평온한 하루를 보내고 아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노벨 문학상이 최고의 권위를 가진 이유는 세계문학에 주어지는 가장 오래된 상(1901년 창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적 맥락과 특수성이 있다. 초기에는 스웨덴이 위치한 북유럽 중심이었다가 유럽 전역, 미국에 이어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로 점차 확대됐다. 다양한 자료를 참고하겠지만 스웨덴 한림원 소속 심사위원들이 결정하는 만큼 서구중심주의가 강하다. 즉 서구 작가들에게는 개인의 내면 탐구에 집중한 사소설도 허용되지만 비서구 작가들은 국가와 민족의 대변자 위치를 요구받는다. 서구 근대의 문학 양식인 소설 자체가 ‘신문과 더불어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구성’(베네딕트 앤더슨)한다는 이론과도 맞는다.

한강의 소설은 ‘한국적’이면서 ‘보편적’이다. 식민지배, 내전, 분단, 군사독재라는 고난의 역사를 세계인이 이해할 수 있는 서사로 풀어낸다. 한강 이전에도 4·3과 5·18을 증언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인간의 존엄을 기억하기 위해 분투해온 많은 작가와 작품들이 존재한다. 한강 작가는 그런 유산 속에서 여전히 치유되지 않는 역사적 상처를 기억하고 어루만지며 ‘창공에 빛나는 별빛이 길을 밝히지 않는 시대에 총체성’(죄르지 루카치)을 추구해온 리얼리즘 소설을 넘어 감성과 문장을 혁신했다. ‘블랙리스트’ 사태에서 보듯 소설을 여전히 ‘국가의 것’으로 생각하는 정부와 불화하는 현재성도 지녔다.

그는 사려 깊고 겸손하다. 섣불리 기쁨을 드러내지 않고 전쟁으로 몸살을 앓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잔치를 사양했다. 만년적자인데도 ‘책방 오늘’이라는 독립서점을 운영해왔으며 후배작가들과 함께 온라인 무크지 ‘보풀사전’에 글을 연재한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소설의 전성기에 확립된 제도인 각종 문학상의 수혜자이지만 소설과 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를 직시해온 셈이다. 그런 그에게 자기 작품에 대한 무조건적 환호와 찬사, 순식간에 100만부를 넘는 판매기록 등은 진심으로 바라는 바가 아닐 것이다. 한강의 말처럼 “표면 아래에서 우리를 흔드는 중요한 감정들, 깊은 의문들, 감각들”을 드러내는 동시에 “인류를 연결하는 힘”으로서 소설의 가치를 지키려면 그의 작품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한국문학이라는 저수지가 필요하다.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일시에 차올랐던 물이 일시에 빠져나갈지, 그렇지 않을지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한윤정 전환연구자

한윤정 전환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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