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논란의 만화 <이세계 퐁퐁남>에 대한 비평이 아니다. 비평이란 대상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경우에도, 행간의 맥락을 읽어내는 과정을 동반한다. <이세계 퐁퐁남>에 대해선 이러한 과정이 불필요하다. 좀 더 정확히는 불가능하다. 최근 네이버웹툰 2024 지상최대공모전 1차 심사에 통과해 현재 베스트도전에 공개 중인 이 만화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약 3년 전 유행하던 ‘설거지론’과 ‘퐁퐁남’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만화 도입부는 다음과 같다. 10년간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가정에 헌신했던 39세 박동수는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고 이혼을 준비한다. 상대에게 유책사유가 있음에도 결혼 10년차이기에 5대5로 재산분할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양육권 다툼 중에 아내가 자해 후 자신을 가정폭력으로 신고하자 경찰에 연행된다. 자신의 지난날을 후회하며 박동수는 자살을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이세계로 넘어가게 된다. 자, 대체 이 이야기의 무엇을 비평할 수 있을까. 서사 패턴이 빤하고 여타 양산형 판타지처럼 이세계가 편의적으로 개입하는 문제를 지적하려는 게 아니다. 해당 만화의 여성혐오적인 요소를 비판하며 트위터(현 엑스)를 중심으로 네이버웹툰 불매 운동이 벌어지고 있으며, 그 비판에 매우 동의하지만 그것 때문만도 아니다. <이세계 퐁퐁남>의 작가는 사실 아무 것도 한 게 없다. 그는 무엇도 재현하지 않고 허접하게나마 서사를 구조화하지도 않았으며 캐릭터를 주조하지도 않았다.
이 만화는 그저 퐁퐁남을 비롯해 인터넷에 부유하는 ‘밈’화된 여성혐오의 방언들을 헐겁게 기워 주절대는 것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2화에서 이세계인이 박동수의 사연을 믿지 않으며 “재산에 기여도 안 한 사람이 단순히 결혼해서 몇 년 살았다고 재산을 절반 이상 가져간다고? 심지어 바람 핀 상대를 법이 보호해주고? 구라도 정도껏 쳐야 믿어주지. 그딴 체계 없는 세계가 있을 리 없잖아! 있다면 진작 멸망했을 거라고!”라 외친다. 나무위키를 통해 ‘사이다 발언’으로까지 평가된 이 대사는 이세계인의 입을 빌었을 뿐 흔한 남초 커뮤니티의 원념을 발산한 것에 불과하다. 박동수의 집이 ‘퐁퐁남’ 담론에서 관성적으로 ‘퐁퐁시티’로 언급되는 동탄인 것도, “법이 지나치게 여자 쪽에 유리하게 되어있단 것”이라는 변호사의 대사도, “출동한 경찰이 아내의 일관된 진술(가정폭력에 대한 허위 진술)만을 믿고 사건을 진행”했다는 박동수의 독백도, 모두 지난 몇 년간 인터넷에서 떠돈 남성 역차별에 대한 흔한 ‘밈’의 언어일 뿐이다. 애초에 재판에서 증언은 중요하며 증언의 신빙성은 진술의 일관성과 비모순성을 통해 경험적으로 증명되어왔지만, 2018년 논란이 된 곰탕집 성추행 사건 유죄 판결 이후 ‘진술의 일관성’이라는 개념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무죄도 유죄로 만드는 남성 역차별의 사례처럼 폄하되었고, 그들의 믿음은 일종의 대안사실을 형성해 끊임없이 순환됐다. 현재 3화까지 공개됐고 몇 가지 사건이 나열됐지만, 사실 <이세계 퐁퐁남> 작가는 자신의 언어를 한 마디도 하지 않거나 못했다. 만약 이 만화의 작가라는 게 있다면, 이름을 올린 ‘퐁퐁’(실제 필명이다)이 아닌, 디씨나 일베, 펨코 같은 커뮤니티일 것이다.
그러니 응모작으로서의 <이세계 퐁퐁남>에 가능한 것은 비평이 아니다. 그보단 빨간 펜 첨삭이 적절하다. 우선 제목부터 빨간 줄. 작가는 공지를 통해 ‘저는 혐오를 조장하지 않습니다. 이 스토리는 이혼 전문 변호사님의 자문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모두 실화 기반임을 말씀드립니다’라며 작품의 여성혐오 논란에 대해 반박했다. 진심이라면, 아무 생각 없이 제목을 지었다는 고백에 가깝다. 그의 말대로 작중 박동수와 같은 실제 사례가 있을 수도 있으며 그것을 모티브로 작품을 만드는 건 자유다. 문제는 특정 사례를 가져왔다며 굳이 ‘퐁퐁남’이라는 단어를 제목에 넣어 자신이 재현하고자 하는 사례를 혐오의 맥락에 위치시키는 짓을 했다는 것이다. 안정된 직장에 다니는 모범적 남성이 성적으로 문란했던 여성과 결혼한 상황을 설거지에 비유한 ‘설거지론’은, 귀납적 이론이라기보다는 혐오하기 좋은 가상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그로 인한 미래의 피해를 선취하고 여성에 대한 미움을 미리 정당화하는 ‘뇌피셜’이다. 제목으로 ‘이세계 이혼남’ 대신 ‘이세계 퐁퐁남’을 선택했을 때 이미 혐오 조장은 시작됐다. 그러니 반박하지 말고 받아들이길. 그 다음 빨간 줄은 “집안일도 양육도 돈 벌어오는 것도” 본인이 거의 다 했다는 박동호의 대사. 이 만화는 아내가 얼마나 악질인지 보여주기 위해 박동호를 완벽한 가장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정작 만화 속 박동수는 장거리 출장을 다녀오느라 연휴도 가족과 보내지 못할 뻔했다가 아내의 불륜을 목격한다. 회사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설정된 그가 자신이 없는 공백의 시간에도 불구하고 육아를 본인이 대부분 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거나 큰 착각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아내가) 돈 관리 한다면서 남자들한테 매달 몇 백씩 갖다 바치거나 과소비”했다는 대사도 빨간 줄. 이 대사는 집안일을 거의 다 했다는 박동수의 주장과 상충된다. 가정 경제의 입출금 내역에 관심 없는 남자가 생각하는 집안일의 범위란 대체 어느 정도일까. 자아를 남초 커뮤니티에 의탁하고 현실 세계에 무지한 작가의 협소한 상상의 범위 만큼일 게다.
만약 이 만화가 학습지라면 모든 구절과 장면마다 빨간 펜이 그어지고 빵점으로 채점될 것이다. 커뮤니티의 여성혐오 방언을 의미 없이 되뇌는데, 그것만으로 하나의 세계를 재현하려니 매 순간 모순이 발생한다. 이세계로 가는 건 박동수가 아닌 만화의 개연성이다. 그러니 이 첨삭의 최종 대상은 <이세계 퐁퐁남>이 아닌 이걸 1차 심사에 통과시킨 네이버웹툰이다. 머니투데이 기사에서 네이버 관계자는 “선정성이나 폭력성 같은 기본 가이드라인은 존재한다. 해당 작품은 가이드라인 위반 사실이 발견되지 않아 1차 심사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네이버웹툰은 그동안 <복학왕>의 여성혐오 논란과 그에 따른 사과와 수정, <참교육>의 인종차별 대사와 해외 공개로 인한 국내외적 비판과 장기 휴재 같은 굵직한 일을 적지 않게 겪어왔음에도 특정 대상에 대한 차별과 혐오의 언어를 선별하고 걸러낼 가이드라인은 마련하지 않았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다. <이세계 퐁퐁남> 작가는 ‘설거지’라는 단어가 혹자의 주장처럼 집단강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주식용어에서 비롯된 거라며 ‘설거지론’과 ‘퐁퐁남’이 마치 혐오표현이 아닌 것처럼 주장하지만, 사실 어원은 부차적이다(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정숙하지 못한 여성과의 결혼을 설거지로 표현할 때, 여성은 더러운 것, 혐오스러운 것으로 표상된다. 또한 그런 결혼이 손해 보는 거래라는 인식은 여성의 가사노동과 기여를 무시하고 무임승차자로 규정한다. 요즘 은밀히 유행하는 신조어도 아니고 이미 3년 전에 상당히 논란이 되고 또한 왜 문제인지 설명되었던 혐오표현과 차별적 담론조차 잡아내지 못하는 가이드라인이란 얼마나 무력하고 무책임한가.
하지만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건, 혐오차별적인 표현과 대사를 걸러낼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사실이 아니다. 이 만화가 지상최대공모전 1차 심사 통과를 했다는 사실이 가장 당황스러운 일이다. 애초에 빨간 펜 첨삭을 한 건, 이 만화가 어떤 면에서 문제인지 비평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냥 작품으로서의 최소 기준조차 넘지 못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다. 공모전 1차 심사 기준은 작화, 분량, 스토리 등으로 공지되었다. 지엽적인 지적이지만 <이세계 퐁퐁남>은 공모전 경쟁작 다수와 비교해 작화와 연출이 매우 거칠고 미숙하다. 물론 흥미로운 아이디어와 잘 짜인 스토리, 기발한 현실 인식, 통렬한 대사나 허를 찌르는 유머 감각 등이야말로 웹툰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던 이유다. 그러니 단 하나의 사실만 제외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세계 퐁퐁남>이 이 중 무엇도 보여주지 못한다는 사실. 정말로 심사를 담당한 편집자들은 그저 인터넷 여성혐오 및 남성 역차별 방언을 나열하는데 그친 이 스토리가 재밌거나 기발하다고 생각한 건가? 이것은 그저 심사의 기준과 역량에 대한 질문이 아니다. 한국에서 가장 큰 웹툰 플랫폼이자 나스닥 상장까지 한 거대 콘텐츠 기업의 담당자들이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이다. 기존 가이드라인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느라 <이세계 퐁퐁남>을 걸러내지 못한 복지부동하는 회사원이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이 만화가 재미있다고 느꼈다면, 억울한 ‘퐁퐁남’이 이세계의 도움을 받아 현실에서 역전 및 복수할 미래가 기대된다고 느꼈다면, 이들 역시 특정 세계관과 ‘밈’에 취한 혐오의 확신범이 아니라 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의문 앞에서 나스닥이니, K-웹툰이니, 글로벌 IP 비즈니스니 하는 말들이 모두 한가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