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적대적 두 국가’ 헌법 개정했나…“도로·철길 폭파는 헌법의 요구”

정희완 기자    곽희양 기자

북한 경의선·동해선 도로·철도 폭파 공개

“헌법에 한국을 철저한 적대 국가로 규제”

정부 “개헌 가능성 크지만, 예단 어려워”

전문가 “전략적 모호성…일부만 공개한 것”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7일 이틀 전 경의선·동해선 남북연결 도로·철도 폭파 소식을 보도하면서 폭파 사진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7일 이틀 전 경의선·동해선 남북연결 도로·철도 폭파 소식을 보도하면서 폭파 사진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북한이 17일 이틀 전 경의선·동해선 도로와 철도를 폭파한 사실을 공개하면서 “대한민국을 철저한 적대 국가로 규제한 공화국 헌법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반영해 헌법을 개정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다만 개헌 관련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개헌 여부와 그 수위를 두고 여러 추측이 나오고 있다.

북한 국방성 대변인은 이날 “15일 낮 강원도 고성군 감호리 일대의 도로와 철길 60m 구간과 개성시 판문구역 동내리 일대의 도로와 철길 60m 구간을 폭파 방법으로 완전 폐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했다. 앞서 한국군 당국은 북한이 비무장지대(DMZ) 내 남북을 잇는 경의선·동해선 도로와 동해선 철도를 폭파했다고 밝혔는데, 북한은 경의선 철도도 폭파했다고 밝힌 것이다. 통신은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남측 합참 격)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의 명령에 따라 폭파를 시행했다고 전했다. 이 내용은 북한 주민들이 보는 노동신문 1면에도 실렸다.

통신은 이번 폭파를 두고 “적대 세력들의 엄중한 정치·군사적 도발 책동”으로 인해 심각한 안보환경이 조성된 데 따른 “필연적이며 합법적 조치”라고 주장했다. ‘정치·군사적 도발 책동’은 북한이 지난 11일 주장한 ‘한국 무인기 평양 침투’ 사건을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통신은 또 다른 이유로 “대한민국을 철저한 적대 국가로 규제한 공화국 헌법의 요구”도 들었다. 북한의 기존 헌법에는 남한을 적대 국가로 명시한 규정이 없어서, 북한이 최근 헌법에 적대적 두 국가론을 반영하는 개정 작업을 마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북한 매체는 지난 7~8일 최고인민회의에서 개헌이 이뤄졌다고 보도했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월 지시한 통일조항 삭제와 영토조항 신설 여부 등은 공개하지 않았다.

정부는 실제 헌법이 개정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본다. 통일부 당국자는 다만 “개헌을 했는데 그간 공개하지 않은 것인지, 개헌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인지 판단할 만한 정보는 현재 없다”라며 “이번에 불명확하게 표현한 의도는 예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개헌 쪽에 무게를 두면서도, 폭과 내용을 두고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통일조항 삭제와 영토조항 신설, 민족 재규정 등을 헌법에 반영했지만 그 파급력을 고려해 간접적으로 공개하는 것일 수 있다”라며 “아니면 구체적 내용을 조항에 담지는 않고, 헌법 서문에 포괄적으로 기술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통일 조항 삭제와 영토 조항 신설 등 구체적인 사안을 모두 개정했을 것으로 본다며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임 교수는 “대남·대미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 일부만 공개한 것”이라며 앞으로 상황에 따라 차례대로 공개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7일 이틀 전 경의선·동해선 남북연결 도로·철도 폭파 소식을 보도하면서 폭파 사진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7일 이틀 전 경의선·동해선 남북연결 도로·철도 폭파 소식을 보도하면서 폭파 사진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북한이 개헌을 했는데도 명확하게 공개하지 않는 건 통일 조항 삭제 등 개헌을 위한 정당성과 명분부터 쌓을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란 해석도 있다. 통일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이고 헌법에도 선대의 통일 노력 및 지향성 등이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올해 들어 김정은 위원장의 독자 우상화 작업에 속도를 내면서 선대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것도 개헌을 위한 정지 작업과 무관치 않다는 시각이 있다. 특히 북한은 최근 김일성 주석을 기리기 위해 지난 27년 동안 사용해온 ‘주체 연호’를 쓰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12일 노동신문 지면·홈페이지의 제호에는 ‘주체 113(2024)’라고 적혀 있으나 13일부터 주체 연호가 사라졌다.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 등 지난 12일부터 발표한 북한의 입장문에서도 서기만 표시했다. 북한은 1997년 김일성 주석 3주기를 맞아 그가 태어난 1912년을 ‘주체 1년’으로 하는 연호를 제정했다.

북한은 이날 남북 간 단절 의지를 분명히 했다. 국방성 대변인은 “폐쇄된 남부 국경을 영구적으로 요새화하기 위한 우리의 조치들은 계속 취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북한을 비판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헌법 개정 가능성을 언급한 바, 이는 통일에 대한 우리 국민과 북한 주민들의 염원을 저버리는 반통일적이고 반민족적인 행위”라며 “정부는 이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당국자는 “정부는 북한의 어떠한 도발에도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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