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상원 서울중앙지검 4차장이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시세조종 가담 의혹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검찰은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에 대해 ‘주가조작 사실을 몰랐다’는 김 여사 진술과 ‘김 여사는 몰랐을 것’이라는 주범들의 진술을 넘지 못하고 4년6개월에 걸친 수사를 마무리했다. 검찰은 수사 초기 김 여사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된 뒤론 강제수사 시도를 하지 않았다. 김 여사 진술과 해명 가운데 모순되거나 의문이 되는 지점이 남았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검사 최재훈)가 17일 내놓은 결론은 ‘김 여사는 주가조작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다. 검찰은 먼저 주가조작 주범들의 진술을 들었다. 주가조작 1차 ‘주포’ 이모씨, 2차 주포 김모씨, 2차 주가조작 컨트롤타워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 등은 모두 “김 여사에게 시세조종 사실을 알린 적이 없다”거나 “주가관리 사실에 대해 몰랐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이씨와 김씨는 2020~2021년 검찰 수사를 받을 당시 “걔(김 여사)는 아는 게 없지” “김건희만 괜히 피해자”라는 말을 주고받았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은 김 여사에게 주식 매도 요청을 한 것으로 드러난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에 대해 “범행을 숨겼을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공범들이 한 ‘김 여사가 권 전 회장을 깊게 신뢰’했고 권 전 회장이 ‘민감한 얘기를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 성격’이라는 진술 등이 근거였다. 하지만 김 여사가 권 전 회장과 20년 넘게 관계를 이어온 점을 고려하면 이런 진술은 오히려 김 여사가 ‘이심전심’ 주가조작을 알았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김 여사는 지난 7월 검찰 조사에서 주가조작 인지 가능성을 보여주는 증거들에 대해 대부분 “잘 기억이 안 난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김 여사 명의의 대신증권 계좌로 2010년 10월28일과 11월1일 이뤄진 거래다. 이 거래는 권 전 회장 등에 대한 1·2심 재판에서 모두 ‘통정매매(담합해 주식을 사고파는 행위)’로 인정됐다. 11월1일 2차 주포 김씨가 가담자인 민모씨에게 ‘주당 3300원에 8만주를 매도해 달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지 7초 만에 김 여사 계좌에서 매도 주문이 나왔다. 10월28일엔 김씨와 민씨가 주식거래 관련 문자를 주고받은 지 3분 만에 김 여사 계좌에서 매도 주문이 나왔다. 김 여사는 거래 직후 증권사 직원과의 통화에서 “아, 체결됐죠”라고 답했다. 사전에 거래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최재훈 반부패수사2부장은 “(김 여사의) 정확한 진술은 ‘기억이 안 난다’였다”며 “녹취록을 보여주니 ‘내가 이런 얘기를 했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최 부장검사는 “(법원 판단과 김 여사 진술이) 완전히 배치되는 건 아닐 수도 있다”면서 “10여년이 지나 기억의 한계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권 전 회장이 김 여사에게 연락했을 것으로 보면서도 “해당 연락의 구체적인 내용, 당시 상황 및 김 여사의 인식 등을 확인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가 “몰랐다”는 김 여사 진술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김 여사는 2021년 12월 1차 서면조사에서 컴퓨터 주식매매 시스템(HTS)으로 체결된 본인 명의 미래에셋 계좌의 주식거래에 관해 “내가 직접 거래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HTS를 이용하지 않는다”는 답도 했다. 당시 수사팀은 모순된 김 여사 진술의 진위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봤지만 김 여사는 수차례 출석 요구에 응하지 응하지 않았다. 김 여사는 7월 검찰 조사에선 이 거래에 대해 “권 전 회장으로부터 소개받은 주식 전문가 등에게 계좌 관리를 일임했다”며 주가조작이 이뤄지는지 몰랐다고 다르게 주장했다. 검찰은 김 여사의 주장을 수긍했다.
이처럼 김 여사와 주가조작 주범들의 진술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은 수사 초기부터 검찰의 의지가 약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은 수사 초기인 2020년 11월에 김 여사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된 뒤로는 강제수사를 시도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 7월 휴식시간을 포함해 6시간 동안의 출장조사로 김 여사를 불기소 처분했다. 한 검찰 간부는 “관련자들의 진술 신빙성을 검증하기 위한 수사 의지는 지금 검찰에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주가조작 주범들의 진술만으로 김 여사가 범행을 몰랐다고 판단한 것도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수사 내용을 잘 아는 한 법조계 인사는 “계좌를 빌리면서 ‘내가 이걸로 주가를 올릴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면서 “다른 정황들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수사팀이라면, 그리고 특검이 도입된다면 또 다르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