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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학산으로 초대한 버니지아 울프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심학산으로 초대한 버니지아 울프

근래 이래저래 읽은 글 중에는 시나 소설, 울화통 터지는 기사, 가끔 흥얼거린 가사도 있지만 젖은 낙엽처럼 나의 심층에 오래 묵혀 있던 어떤 완고한 생각의 딱지를 긁어낼 만큼 폐부를 깊숙하게 찌른 산문이 있다. 오랜 동안, 시간을 잃어버리며 나는 사람의 상태를 유지해 왔다. 무려 60조 개의 세포로 구성된 몸은 반투과성의 특수한 막에 둘러싸여 그 신진대사를 영위하는 중이다.

나무 공부하러 산에도 제법 다닌다. 산이 좋아 산에 가지만 나는 자연과의 분리, 사물들과의 구별을 철저하게 해왔다. 모름지기 내 위주로 생각을 해왔고 뱀이나 벌레 하나 속옷으로 뛰어들까 겁을 먹었다. 언제나 한결같이 제자리를 지키는 깔딱고개의 눈으로 나를 보자면 참 이기적인 놈이라 여길 게 틀림없겠다.

이런 나의 태도를 한번 되돌아보게 하고 나를 좁장한 졸장부로 만든 한 편의 글은 버지니아 울프의 ‘나방의 죽음’이다. 우연히 열린 창문으로 뛰어든 나방이 힘을 잃고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담백한 필체로 적는 짧은 산문. 무릇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은 동등한 자격으로 목숨을 몸 안에 하나씩 퐁당퐁당 보유하고 있다. 모든 개체는 각각의 종(種)을 대표하듯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죽어가고’ 있다는 엄숙한 사실을 울프는 작은 나방을 통해 건조하게 전한다.

모처럼 심학산 오르는 길. 어딘가 풀섶에서 투닥투닥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웬 말벌과 풍뎅이가 한데 뒤엉겨 난투극을 벌이는 게 아닌가. 얼른 버니지아 울프도 초대하고 싶은 광경이다. 밑에 깔린 풍뎅이는 저를 찍어누르는 말벌의 등 뒤 누군가와도 맞서고 있는 듯했다. 혼자서 둘을 상대하는 셈이었다. 지금 저 풍뎅이는 풍뎅이과를 대표하여 자연의 거대한 괴한과 홀로 맞짱 뜨는 중!

풍뎅이는 보이지 않는 그를 어디까지 보았을까. 다리를 버둥거리며 힘껏 기력을 모으지만 그때뿐이었다. 나는 곤충들이 일을 마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오랫동안의 임무를 벗고 사체로 변신한 풍뎅이를 말벌이 반으로 썰더니 한 토막을 들고 숲으로 사라졌다. 울프와 나 그리고 그. 셋이 만드는 삼각형 사이로 세상의 모든 저녁이 젖어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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