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성일 신경면역학회 홍보이사·경희대병원 교수 인터뷰
“실명까지 가고야 신약 사용 건보지원 초기부터 적용을”
치명적 후유증 시신경 척수염 범주질환

오성일 신경면역학회 홍보이사·경희대병원 교수
명칭부터 복잡한 ‘시신경척수염 범주질환’은 뇌와 시신경, 척수 등 중추신경계에 반복적인 염증이 발생하는 자가면역질환이다. 심하면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안구의 통증과 시력 저하, 배뇨 문제, 운동 장애, 하반신 감각 저하 등 전신의 다양한 중증 증상이 나타날수록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심한 후유증이 남는다. 환자들은 무엇보다 수개월에서 수년 간격으로 반복되는 이런 재발 때문에 고통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야 한다.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희귀질환이어서 병에 대한 정보를 얻을 통로가 사실상 진료실뿐인 것이 현실이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대한신경면역학회는 환자들의 질환 관리 방안을 비롯해 일상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보를 알리는 데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학회의 오성일 홍보이사(경희대병원 신경과 교수)를 만나 이 질환의 치료환경을 둘러싼 다양한 궁금증에 관해 답을 들어봤다.
- 시신경척수염 범주질환은 어떤 질환인가.

“예전에는 시신경척수염이라고 불렸는데, 최근 이 질환이 시신경염과 척수염 외에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시신경척수염 범주질환으로 질환명이 바뀌었다. 지금은 시신경염과 척수염 외에 뇌의 염증 반응도 포함하고 있다. 회복이 어려운 재발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으로, 시신경염은 재발을 거듭할수록 양쪽 눈이 모두 실명될 수 있고, 척수염이 여러 번 재발하게 되는 경우 휠체어를 타야 할 정도로 악화될 수 있다. 증상 발현 부위가 다르더라도 발생 원인은 거의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환자에 따라 시신경염과 척수염, 뇌 염증 중 하나만 나타날 수도 있고, 시신경염과 척수염이 동시에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 환자가 이 질환을 의심할 만한 특징적인 증상이 있다면.
“갑자기 한쪽이나 양쪽 눈이 안 보이기도 하며 얼굴이나 팔다리가 마비되기도 하고, 원인 모를 딸꾹질이나 구토 같은 증상 등이 나타난다. 뇌졸중과도 증상이 유사해서 초기에 스스로 감별하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다. 다만 증상이 심각해서 환자들이 병원을 빨리 찾는다. 자기공명영상(MRI) 검사 결과 뇌졸중보다 중추신경계의 염증성 병변이 더 의심되면 해당 부위의 면역질환에 대한 추가 검사를 시행해 최종 진단을 내리고 있다.”
-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다발성 경화증으로 오인될 가능성도 높을 것 같은데, 두 질환을 어떻게 감별하나.
“임상적인 증상이 유사하기 때문에 MRI 소견과 함께 ‘아쿠아포린4 항체’ 유무를 확인해 감별 진단한다. 과거 아시아의 다발성 경화증 환자 중 일부가 치료를 받아도 개선되지 않아 연구하던 도중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아쿠아포린4 항체가 있다는 점이 발견되면서 이들을 시신경척수염 범주질환으로 분류하게 됐다. 시신경척수염 범주질환 환자에게 다발성 경화증 치료를 하면 증상이 악화되거나 재발 위험이 커지므로 증상이 나타났을 때 빠른 항체 검사가 필요하다. 최근에는 국내에서 항체 검사가 잘 이뤄지고 있어 과거와 달리 감별 진단이 지연되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 진료현장에서 본 환자 중 특히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나.
“다발성 경화증 치료를 받다 재발이 계속돼 우리 병원으로 전원을 온 환자가 있었다. 검사를 통해 시신경척수염 범주질환으로 재진단을 받았는데, 이미 여러 차례 재발돼 후유증이 많이 있었지만 재발 방지 치료를 받고 나서부터는 더 이상 재발하지 않았다. 진단의 중요성을 체감했던 환자다. 이 질환은 남성에 비해 젊은 여성에서 발생률이 4~9배 정도 높다. 그래서 임신·출산 시기에 재발을 겪는 여성 환자들을 종종 진료실에서 만난다. 인생의 큰 축복이 있는 시기에 재발로 고통을 겪는 환자를 보면 마음이 많이 아프다.”
- 환자를 위해 학회 차원에서 질환 교육 영상을 제작하는 등 여러 지원활동에 나서고 있다고 들었다.
“몇년간 학회 홍보이사로 활동하면서 코로나19 유행 시기에 환우회와 공동으로 온라인 강의를 실시한 경험을 바탕으로 당시 환자들이 많이 걱정하던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관해 설명서를 배포한 적이 있다. 이후 환자단체로부터 질환에 대해 궁금한 점들을 확인할 수 있는 영상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받았고 김호진 학회장도 지원을 해줘서 교육 영상을 제작하게 됐다. 현재의 의료상황 때문에 환자들의 궁금증을 모두 해소하기엔 외래진료 시간이 충분치 않은 점을 고려해 가장 많이 궁금해하는 내용 위주로 제작하고 있다. 처음 진단됐을 때나 재발이 일어났을 때, 새로운 치료제가 나왔을 때와 관련된 내용을 중심으로 하고, 질환 관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도 제공하고자 질환 수기나 치료 지원 프로그램 정보에 대한 영상도 만들고 있다.”
- 학회에선 환자의 치료환경 개선을 위해 어떤 점이 필요하다고 보는지.
“이 질환을 포함한 신경면역질환 대부분이 치료환경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은 편이라 이를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진행 중이다. 주로 치료과정에서 새롭게 개발된 신약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국민건강보험 급여를 신속히 적용하기 위한 보건당국과의 논의에 적극 나서고 있다.”
- 국내에선 아직까지 신약을 초기 치료부터 쓰지 못하는 현실 때문인가.
“다른 질환들도 비슷하지만 이 질환 역시 신약 도입 초기부터 사용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솔리리스나 엔스프링 등과 같은 신경계 희귀질환 신약들은 대부분 고가이다 보니 건강보험 재정을 고려해 여러 차례 치료 실패를 겪었을 때만 사용할 수 있다. 이 질환이 주로 30~40대에 발생하는데, 현재 급여 조건에서는 심한 재발과 부작용을 여러 차례 겪고 실명이 되거나 휠체어를 타는 상태로 가서야 신약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뒤늦게 신약을 쓰더라도 남은 인생 40~50년을 심각한 후유증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다. 최대한 빨리 치료를 시작해 재발을 막는 것이 환자 삶의 질 유지를 비롯해 사회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는데, 재정을 고려해야 하는 보건당국 입장에서는 쉽게 결정할 상황이 아닌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
- 새로운 치료제는 개선된 효과를 보이고 있나.
“기존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솔리리스 등 신약의 재발 방지 효과가 90%에 가까운 것으로 확인됐다. 1·2차 치료에서 쓰이는 약제들의 재발 예방률이 50% 내외인 점을 고려하면 매우 유의미한 재발 방지 효과다. 재발은 한 번 나타날 때마다 후유증이 심하고, 갑자기 일어나 시점을 예측할 수 없다. 의료진 입장에선 환자가 더 심각한 후유증을 겪지 않도록 새로운 치료제를 더 빨리 시도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여러 차례 재발을 겪는 환자들 입장에선 다음 재발에 대한 두려움이 클 수밖에 없겠지만 다행히 치료환경이 조금씩 더 좋아지고 있고, 학회에서도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므로 지금 받는 치료를 잘 따르면서 힘을 내기 바란다.”